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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Jan 25. 2023

3년 만에 홍콩에서 먹은 대만 우육면

1.

20년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홍콩에 왔다.


2008년부터 한 달에 한두 번은 홍콩을 다녀왔다.

이렇게 갑자기 길이 막힐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시간이 무려 3년일 줄은.


홍콩 MTR도, 주변 풍광도 여전했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침샤추이는 명절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갈색, 백색, 흑색 피부색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광둥어, 영어 틈틈이 한국어도 들렸다. 걷다 보니 어느새 스타의 거리였다. 바다도 그 내음도 예전 그대로였다.


2.

홍콩에 오면 두 번 중 한 번은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처음 홍콩에 와서 길을 헤매다 우연히 들른 곳인데, 하버시티 길 건너 애플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대만 우육면집이다.

처음엔 사실 매장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붙들려 들어가게 된 곳이었다. 유창한 대륙언어(북경어)로 ‘꾸어라이 꾸러라이 하오츠’라고 했다. 광둥어는 알아듣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는 반가운 음성이었다. 그래. 맛있다는데 한 번 들어가 볼까. 막상 들어가 주문을 하고 움푹 파인 주걱 같은 작은 수저로 국물을 마셨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면 발은 꼬들꼬들 탱탱하기까지 했다. 듣기로 홍콩에서 개최하는 요리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메뉴라고. 대만 사람이 오래전 홍콩에 넘어와 차린 정통 대만식 우육면이라고도 했다. 가격은 당시 내 주머니 사정보다 비쌌지만 그 맛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홍콩달러로 85달러였던 것 같다.


3.

‘코로나로 3년 동안 방문하지 못한 대만 우육면집 명절인데 열었을까?’ 난 속으로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하버시티 애플매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예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너무나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을 눌렀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한약을 달인듯한 우육면 국물 내음이 코에 닿아 침샘을 자극했다. 우육면과 목이버섯, 나이차(밀크티)를 주문했다. 금세 우육면이 테이블에 올라왔고, 함께 간장에 절인 마늘과 고추가 따라왔다. 예전 그대로였다. 국물을 마셨다. “와!”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허겁지겁 먹방이 시작됐다. 국물 한 숟갈, 면 후루룩후루룩, 간장에 절인 마늘 하나, 고추 하나. 잠시 후 목이버섯이 왔다. 국물 한 숟갈, 면 후루룩, 간장에 절인 마늘하나, 목이버섯 목이버섯.


그릇을 금세 비웠다. 본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난 만족한 기분으로 배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4.

계산대로 가서 금액을 물었다. 예전 그 가격이었다. 홍콩달러를 한 장 한 장 찾아서 금액에 맞추어 계산을 하며 내가 말했다. “3년 만에 왔어요. 잘 먹었습니다.”


“네. 알아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지금 저 테이블 손님도 그리고 저기 저 테이블 손님도 한 참만에 오셨어요. 다들 맛이 그리웠다고 하네요.” 점원이 대답했다.


“네. 이 맛이 너무 그리웠어요. 드디어 먹었네요. 홍콩에 왔는데 예전과 다름없는 것 같아서 좀 안심이 됐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말했다.


“3년을 버텼어요. 아시다시피 이곳 위치에 매장은 임대료가 비싸죠. 80세가 훌쩍 넘은 사장님이 반드시 이 가게를 지켜야 한다며 2000만 홍콩달러의 손해를 감수하고 버티셨어요. 30년 동안 운영한 가게를 닫을 수 없다면서요. 이 맛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면서 고집을 부리셨어요. 직원들도 대폭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텼어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예전과 다름없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이, 인내가, 아픔이… 있었을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묵묵히 그녀의 말을 곱씹다 보니 울컥한 마음에 눈가에 이슬이 맺히려 했다. 이슬이 맺히지 못하게 마음을 다잡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렸다. 하버시티 명품 매장들은 고급 고급하며 자신을 뽐냈다. 홍콩 빨간 택시가 지나가고, 노란색 파란색 슈퍼카들도 지나간다. 오랜만에 찾은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문 닫은 매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는 예전에 걸려있었을 간판 흔적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명절이라 문을 닫은 게 아니었다.

3년을 버틴 곳과 버티지 못한 곳이 있었던 거다.


홍콩은 내 기억 속 그대로였다.


아니다.


내 기억 속 그대로이길 바라고 바랐을 뿐인지도 모른다.


마치 내 조국이, 내 고향이, 내가 자주 가던 순대국밥집과 동네 미용실이 3년 전 그대로이길 바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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