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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Jan 28. 2024

불혹

마지막 회


*

이른 아침 첸은 상하이 푸동 공항까지 날 바래다줬다. 그와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국제선 탑승을 위해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했다. 폭우 소식에 중국 국내선 비행기들은 결항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인천행 국제선 대한항공은 30분 정도 딜레이 됐지만, 결항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탔다. 요우커라 불리던 중국인 관광객이 없어서인지 기내는 북적이지 않았다. 창가 쪽 자리에 이십대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있었다. 내 좌석에 놓인 헤드폰과 담요를 정리하고 앉았다. 좌석 벨트를 몸에 맞게 조였다. 허리를 바로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비행기가 곧 이륙하겠습니다.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무원이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등받이를 똑바로 해주세요. 혹시 옆에 계신 분이 일행이신가요. 아니시면 비행기 좌석 여유가 많으니 뒷 좌석으로 옮기셔도 됩니다. 옆 좌석 여성이 내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쪽에 비켜섰다. 그녀는 굼뜬 몸짓으로 내 곁을 지나 뒷 자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난 원래 내 자리에 다시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다시 눈을 감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후 기내식을 나눠줬다. 비빔밥과 카스를 달라고 했다. 기내식은 좁은 좌석 테이블을 꽉 채웠다. 밥을 먹으며 영화나 볼 요량으로 K-무비를 뒤졌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 영화를 골랐다. 비빔밥 한 입, 카스 한 모금. 영화는 류승룡과 염정아가 주인공인 것 같았다. 비빔밥을 먹으며 보는 둥 마는 둥 영화를 봤다. 갑자기 염정아가 “세상에 여기가 이렇게 변했네.”라는 대사와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류승룡도 함께 불렀다. 수줍게 웃는 그 모습을. 그 시절 그땐 그렇게 갈 때가 없었는지 언제나 조조할인은 우리 차지였죠. 돈 오백 원이 어디냐고..


노래를 듣다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왜. 왜. 왈칵하고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비빔밥을 먹었다.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냅킨을 집어 코를 푸는 척하면서 눈을 닦았다. 비행기에서 비빔밥 먹다가 울면 안 돼. 눈물이 또 또로록 떨어졌다. 다시 냅킨을 집어 코를 푸는 척 눈을 닦았다.


영화를 멈추고 비빔밥을 빠르게 입으로 가져갔다. 카스를 원샷하다시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내 복도를 따라 걸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접이식 문을 닫고 뚜껑이 닫혀있는 변기 위에 앉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입에선 엉엉 소리가 내뱉어졌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두려워 물을 내렸다. 버튼을 눌러 개수대 물을 받아 세수했다. 종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기내복도를 따라 자리로 돌아오는데 내 옆자리에서 뒷자리로 옮긴 이십 대 여성이 영화를 보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보고 있는 영화는 내가 보던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아직도 내 눈가에 서성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카스 하나만 더 주세요.”라고 말했다. 카스 한 모금. 또 한 모금. 목을 타고 넘어가는 카스 때문에 가슴이 더 시렸다.


*

난 결국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정지 화면으로 두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여권을 펼쳐 스캔하고 자동심사대를 통과하고, 짐 찾는 곳으로 걸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짐 찾는 곳을 눈으로 살피는데, 갑자기 입 안에 단맛이 느껴졌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단맛을 좀 더 자세히 느끼고 싶어 혀 끝을 입천장에 이리저리 천천히 굴려봤다.


파인애플 맛이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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