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징 하나는 내 마음을 상대에게 완전히 쏟아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눈 밑에 있는 눈물 점 같은 것.
살며 많이 울었겠다, 혹은 울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왈칵 마음을 다 엎어버린다.
그리고는 궁금해진다.
너는 어쩌다 네가 되었나.
너를 너로 만든 것들은 무엇일까.
무엇으로 이루어졌니, 무엇이 널 그렇게 만든 거니.
누가 너를 그렇게 대한거니.
홀로, 얼마나 외로웠니.
어느 날 네가 말했다.
"나는, 고집이 있어. 고집이 아주, 쎄."
"그건, 내 말을 들어달라는 뜻이야."
술에 취한 채 양쪽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나른히 내뱉는 그 말에
왜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
고집이 이리도 애잔한 거였나? 하고 생각했다.
누가 그리도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건지.
네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혼자서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는지.
순간순간 땅 밑이 꺼져가는 기분을 느끼며
저 끝, 너의 마음 모서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굳건히 버텼는지.
소리도 없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양손을 말아 쥐고 얼마나 부들거리며 버티고 서 있었는지.
마침내,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기로 작정을 해버리고 만다.
과거의 너부터, 그 먼 시절로부터, 그때로부터 끌어안는다.
너의 시절을 들여다보고 지나온 걸음이 만든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
짓이겨 굳어진 흔적에 차분히 내 손을 맞대어 보는 것.
결국엔 네 모든 생을 사랑하게 되는 것, 그런 일.
참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저의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사람.
그 뒤엔 반드시 선한 의도가 있다고 믿게 되는 사람.
힘이 실린 괜찮다는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
타인의 괜찮아 라는 말은 언제나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
그냥 흘려보내. 지난 일이야.
어쩔 수 없어. 괜찮지 않으면 어쩔 거야.
그런데 네가 해주는 괜찮다는 말은,
어쩐지 말 그대로 정말 괜찮을 것만 같다.
그냥 그대로도 괜찮을 것 같은.
아무런 문제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무엇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안정감. 단단하고 든든함. 그리고 무탈함.
비로소 안전한.
아침에 뾰루퉁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어도
기어이 저녁에 다시 전화해서 다정함을 들려주는 사람.
나는 강풍이 부는 날 속수무책으로 열린 문 한 짝이 되어 끼익 거리며 흩날리다가도
너의 따뜻한 목소리 한번에, 애정이 담긴 말투 한번에
조용히 닫혀버리고 고요를 되찾는다.
괜찮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네가 불안해하는 일, 상상하는 일은 지금 당장엔 없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나는 더러 울보가 되고 심술쟁이가 되고
질투쟁이가 되고 소심쟁이가 되어버리지만
애정 어린 시선에, 너만의 향이 풍기는 포옹에, 휘어진 눈으로 다가와 맞추는 입술에
다시 또 웃어버린다. 그냥 웃어버린다.
웃지 않으려 해도 웃음이 나온다.
우린 함께 바보처럼 웃어버린다.
투명히 들여다보이는 순수하고도 휘영청 어여쁜,
그리하여 두둥실 떠오른 사람.
그런 너는 자면서도 나를 찾는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손을 뻗어온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나 역시 몇 번이고 너의 손을 잡는다.
얼굴을 쓰다듬고 품 안으로 파고든다.
나의 너는 붕 뜬 채 하염없이 흔들리던 나를 잡아 땅에 발 디디게 만들고
헤엄치는 척 떠밀려 다니던 내게 다리를 만들어 육지로 나아가게 한다.
나를 곧게 서게 하고 중심을 갖게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감정의 정체를 모르고
정말로 진실한가 스스로를 의심하던 순간을 지나서
사랑한다는 말로는 사랑이 다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맞이한다.
다행인 네가 다행을 말하면 나는 과분히 다행해지고
사랑하는 네가 사랑을 말하면 나는 다분히 행복해진다.
저 문으로 나간 너는 꼭 저 문으로 금방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
언제까지고 곁에 있어줄 것만 같다.
무뎌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익숙해질까 불안해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간절히 꿈꿔오던 나는,
네가 나의 마지막이 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