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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25.03.01

by 윤한솔

홀로이 발 디디는 해질 무렵의 빈 공간이 낯설다.

생명체가 가득했던 때가 있었는데 텅 비어버렸다.

이 공간에서는 나도 숨 쉬지 않기를 택한다.

모두 떠나갔고 모두, 숨이 멎어버렸다.


입술 비죽이며 우는 것밖에는 할 일 없는 이 집에서

하루를 마친 후 샤워를 끝내고 조촐한 저녁을 먹는다.

먹는다? 혹은 마신다? 그래 그냥 쑤셔 넣는다.

이리 먹는 것은 사료와 다름없다 했던가.


종일 타인과 살갑게 마주하며 눈 맞추고 웃다가

늦은 시간에야 홀로 와락 쏟아져 내린다.

저 다정 속에 내가 있었다면.

나도 저 다정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서러워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서글퍼도 닿아 있을 곳이 없다.

완전히 혼자된 첫 하루에는

눈가가 통통히 붉어지도록 우는 것밖엔 할 일이 없다.

속수무책으로 울어버리는 것 말고는 맡은 일이 없다.


이런 날엔 습관처럼 철없이 나의 부고를 꿈꾼다.

건넛방에 누구라도 있는 것처럼 조명을 켜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가 살아 숨 쉬던 저 건넛방에.


나를 찾는 그리운 이의 알림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그리운 이는 많으나 나를 찾는 이는 없다.

구태여 내가 먼저 찾을 이도 없다.

결국엔 아무도 없다.


나와 같은 이들이 차고 넘칠 텐데

다들 어떻게 견디는지 묻고 싶다.

이 적막을, 이 고요를, 이 결핍을.

누군가 견디는 방법이라도 알려준다면

따라 해보기라도 할 텐데.

나도 그랬었다고, 곧 괜찮아진다고 말 한 마디라도 건네준다면

이 악물고 굳세게 참는 척이라도 해볼 텐데.


언젠가 나를 매다는 용도로 사용하려 주문한 철봉은

문틀에 끼우는 방법을 몰라 아무 데나 뒹굴고 있고

자고 일어난 때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이불은

온기 없이 차갑게 식은 채 한쪽에 구겨져 있다.

그 흔한 개 한 마리마저 짖지 않는 이 동네는

나의 공간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모두들 곁에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겠지.


내일은 퉁퉁 부은 눈을 가려야 하니 안경을 써야겠다.

그리고 다시 웃어야지.

속없는 사람처럼. 한평생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처럼.

그 어떤 고난도 괴로움도 없던 사람처럼

상냥히 웃고 정답게 굴어야지.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엔 울어야지.

입을 틀어막고 서러이 우는 것밖엔 할 일이 없으니.

망연자실 울어버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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