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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되자

by 윤한솔

갑자기 가라앉는 기분에 눈썹이 팔자가 되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네가 있는 안방으로 쪼르르 들어가 옆에 누워 와락 안아버렸다.

“갑자기 기분이 슬퍼. 울고 싶어.”

너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빠른 박자로 등을 토닥여주었다.

토닥닥닥닥닥 토닥닥닥

조금의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다가

다시금 장난을 치는 너 때문에

눈물을 흘린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고개가 넘어가게 웃고 말았다.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일어나 앉으니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거.. 분명 방금까지 슬펐는데..

원래라면 종일 슬퍼야 하는데.. 눈물이 쏙 들어갔네..’

‘더 느린 박자로 등을 토닥여 줬으면 조금 더 울었으려나’

'박자가 너무 빨라서 울 겨를이 없던거 아냐?'

머쓱하게 일어나서 밥 먹자를 외치고 고기를 볶았다.

밥 한 공기를 다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

얼마 전, 매일 보고 싶지만 유난히 더욱 보고 싶던 어느 날.

장례식장에 들렀다 집에 가는 길에 보러가겠노라며 연락을 했다.

너는 네가 오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난 정말 잠깐,

진짜 잠깐 얼굴만 보고 집으로 갈 거라 내가 택시타고 간다고 말했다.


멀리서 그리웠던 모습이 나타나고

닿을 수 있는 거리만큼 가까워지자 나는 너의 손을 바로 잡아챘다.

카페를 가자는 너의 제안도 거절하고

다시 집에 가는 택시를 잡으러 조금 걷는 동안

손을 꽉 잡았고 팔짱을 꼈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는 왜 매일 예쁜지.

어쩜 이렇게 어여쁜지.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너는 이 공간에 실존하는구나. 실재하는구나.

여기가 너의 삶이구나.

나는 나의 생활을 살고 너는 너의 생활을 살고.

겨우 메신저 하나로 이어져 있던 것에서

불규칙을 만들어 존재를 확인하고 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 너는 존재하는구나.

나 역시, 존재하는구나.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자다 나왔다던 너는 눈가에 그 흔적이 묻어있었지만

깔끔하게 밀린 수염자리와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 냄새가 귀여웠다.

빌려가놓고 돌려주지 않은 내 모자를 제것마냥 푹 눌러쓴 모습까지도.

사랑이 깊어진다. 점점 더 물들어간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난 무섭고 두렵고 안하고 싶다며 도망가려 했고

또 도망가려 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어이 나는 너를 찾아온다.

너를 생각하면 반복해서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널 위해 내가 뭔들 못할까. 내가 뭔 짓을 못하겠니.

희한한 각오다.

이상한 사랑이다.


그래서 말인데, 있잖아.


너랑 나랑, 같이 살까?

이 집에서 같이 밥해먹고 같이 자고 일어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야.

떨어져 있으면 불안하니까 눈 앞에 두고 지켜보자.

한 시절을 모조리 우리로 채우는 거야.

생활을 맞대고 매순간 존재를 확인하며 서로의 증인이 되어주는거지.

내가 몰래 울지 않도록,

네가 홀로 이겨내지 않도록 우리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거야.

너는 내가 없는 곳에서도 매분 매초 사랑스러울테니 난 그걸 봐야겠어.

그 순간을 모조리 내 눈에 담아야 겠어.


물론 걱정은 돼. 그것도 아주 많이.

난 있지도 않았던 일부터 일어나지도 않을 일까지

모조리 끌고와서 걱정하는 사람이니까.

싫은 점은 매일 하나씩 새롭게 발견하게 될 수도 있고

좋은 점은 언제 그랬냐는 듯 퇴색될 수도 있어.

어쩌면 서로 후회를 할 수도 있고

어떤 다짐을 하고 시작하던 간에

금방 모든 게 다 끝나버릴 수도 있어.

저 멀리 존재하고 있을 끝을

굳이 바로 코앞까지 앞당겨 올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어차피 저 멀리가 끝이라면

당겨와 끝을 맞이한들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해.

우리 그냥, 끝장을 보자.

그 끝이 어딘지, 어디 한번 보자.


한편으로는 대책도 없이 걱정같은 건 없기도 해.

비유하자면 내일 내가, 아니 내일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오늘 내가 길을 걷고 일상 생활을 하며 마주칠 사람들의

존재는커녕 얼굴도 이름도 모르듯이

다가올 일 또한 그런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뭐야, 정말이지 예측 가능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왜 고민하고 어떻게 고민하지?


삶은 대략적으로 그러한 것.

그리고 그러한 삶을

기왕이면 너와 매순간 함께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것.


나는 널 만나고 모서리가 무수한 어떤 도형에서 온전한 하나의 구가 된 느낌이야.

빈틈을 채웠어. 메웠어. 네가.

그러니 우리 같이 살자.

그러다 먼훗날 우리,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자.

그 아이의 세상이 되자.

살며 맞이하게 될 환희의 순간도 좌절의 순간도 함께 겪자, 이겨내자.

너와 나에서 우리, 그래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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