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깊어질수록 푸른빛이 짙어지듯
감정이란 것도 그러하지.
사랑에 빠지는 건 순간이면 충분하고
이불을 귀까지 덮었을 때처럼 두근두근 하는 소리가
매순간 온몸에 둥둥 울려 퍼지지.
이건 이래야 하고 저런 저래야 한다고
스스로 그려놓은 밑그림이 명확했지만
너에게 있어서만큼은 이래도 저래도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지게 되고,
네가 한 말을 오래도록 곱씹어 내내 단맛을 느끼곤 해.
너는 가장 밝은 빛이어서
가장 어두운 나는 네게로 향할 수밖에 없고,
그 빛밖엔 보이지 않고,
따를 길은 오직 한 길 뿐이고.
길 끝에 도착하면 시야 안에 자리 잡는 갈색 눈동자.
그 눈을 통해 나는 네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우리는 손을 뻗어 마주잡고 이어지지.
아무리 넓은 어항이라도 물이 반절밖에 차있지 않으면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반경은 딱 그만큼이잖아.
나는 웬 되도 않는 밥그릇 같은 곳에서 허우적거리다
네게 이끌려 드디어 바다로 나왔어.
깊어지는 곳으로, 푸르러지는 그 곳으로 말이야.
너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언제나 가장 명확한 행복이고
가진 것 없는 내가 세상에 내보이고 자랑하고픈 행복이고
가진 것 없다던 내가 유일하게 가진 짙은 불안함을 무색하게 만들지.
현재와 미래를 굳이 등지고
과거를 보며 뒷걸음질로 앞으로 나아가는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향해가는 것도 아닌
기이한 모양새를 한 나를
너는 기어이 붙잡아 돌려세우고는
앞으로 걷게 해.
아, 너는 어쩜 과거는 과거에 둘 줄 아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에 들어서고,
그동안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고
내 잣대로 단정 짓길 바라왔던 건 아닌지 제대로 사고하게 해.
내가 과거를 들여다 보느라 등졌던 그 미래 말이야.
결이 곱고 섬세한 표현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사랑한다는 말밖엔 할 줄 모르는,
사랑한다는 말이 최고라는,
작고 여리고 귀엽고 어여쁜
애틋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너를 나는 어쩌면 좋을까.
어쩐지 너의 먼 미래에 손을 맞잡고 있을 사람은 내가 아닐 것만 같아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하고 사랑하지 않으려, 더 사랑하게 되지 않으려
혼자서 말도 안 되는 사투를 벌였던 어느 날을 지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
인연이라면 맺어지고 아니라면 풀어지겠지.
그러나 나는 너와 풀어질 생각이 없고.
그렇게 두지 않을 심산이고.
너와 내가 맺어지지 못한다면 내가 네게 매달려라도 있을 요량이고.
묶어 매놓을 작정까지도 하게 되고.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이리 서투르고 두려웁고 떨리고 설레하는 사람이라 어디에 쓰나 싶었던 나는,
자그마한 일에도 왈칵 눈물이 쏟아져버려 도대체 어디에 쓰임이 있나 싶었던 나는,
와르르 와르르.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져 내렸다가 지어져 올라가던 나는,
그렇게 버둥거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홀로 너무나 바쁘고 숨 가빴던 나는,
너를 만나고 비로소 나의 쓸모를 찾아.
온 마음을 다해 굳건히 사랑하는 일.
그저, 사랑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