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불안에 잠식당하는 때가 있다.
모두가 날 싫어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내게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되다가
순식간에 그걸 덜컥 믿어버리는 때가.
그럴 때면,
동생과 함께 고아원으로 보내질 거라는 말을 들은
그날 아침의 기분이 되살아난다.
그 상실감. 절망감. 막막함.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후회와
끝없이 파고드는 자기혐오.
그리고 약간의 분노.
내 감정에 내 목이 졸리고 만다.
‘그건 사실이 아냐. 망상일 뿐이야.’ 라고 되뇌다가도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머릿속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지닌 건 불안이다.
언제나 다른 소리가 안 들리게
불안은 커다란 목소리로 자기주장을 한다.
원래가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
언제나 이기는 쪽은 그렇게 확고히 정해져있다.
밤은 늦었고, 끓어오르는 생각에
장기가 다 익어버릴 것만 같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시 또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에 잠을 자야한다.
잠이나 자야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하등 나아질 것 없더라도 말이다.
나는 자꾸만 심술이 나고 엇나가고 삐뚤빼뚤 해진다.
곧은 선을 그을 테니 따라만 오라는 것도 무시하고
혼자서 휘청휘청. 때론 취한 채로 휘청휘청.
나는 올곧게 걸을 수 없는 사람임을 들키고 싶지 않거든.
나는 좀 더 다정히 살가운 것을 원하고,
그러나 나조차도 나에게 다정하지 않고 살갑지 않고.
타인이 작은 일에 기분 상할까 걱정하는 건,
내가 작은 일에도 쉽게 기분이 상하는 사람이라 그러한 것.
눈짓 하나에도, 숨결 한번에도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망상은 자라나 우주 끝을 찍고 돌아오는 것.
끝이 없는 곳의 끝까지 가는 것.
끝을 오가는 길에 누구도 없어 외롭디 외로운 것.
아무런 희망이 없어 불안하고 막막하고
불안하니 막막하고 막막하니 불안한 것.
나는 언제쯤 진동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
맞을 것도 틀릴 것도 없는 일에
자꾸만 빨간색 빗금을 쳐가며
나라는 사람과 내가 살아온 생을 오답지로 만드는 것.
나는 빵점짜리 인간.
붉은 선으로 얼룩진 구겨진 종이.
물에 젖어버린 신문지 같은 것.
내 안을 빼곡하게 채운 생각은
티내지 않으려 해도 주변에 묻을 수밖에 없고,
미안해. 내가 나라서.
이것밖에 안돼서.
나 아닌 다른 이가 네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더 나았을 텐데.
존재자체로 사과하는 것.
그러나 뻔뻔히 존재하는 것.
존재해서 미안하다는 말.
그것 참 그럴싸한 척 하는 꽤나 병신 같은 독백.
그럼에도 바라는 것은,
이런 내가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비춰졌으면.
...혹은 너무나도 특별하고 애틋하여
빈틈없는 온기로 빼곡하게 데워주고 싶다고
덧난 곳을 모두 끌어안아 치유해 주고 싶다고
다시는 그런 일도 감정도 겪지 않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여겨줬으면.
해.
나는 그래주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