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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 Sep 22. 2024

12시에 잠자고 싶은 사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전교생 모두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교였다. 그래서 기숙사 독서실은 평소에 비어있었지만 시험기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다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독서실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한다. 보통이라면 11시쯤에 기숙사 소등을 하고 취침을 하는데 시험기간에는 시간제한 없이 자유롭다. 밤늦게까지 공부한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때 당시 전교 5등 안에 드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그 친구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시험기간이든 아니든 항상 10시쯤인가 방에 들어가 잠잤기 때문이다. 시험기간 아닌 날에는 그럴 수 있지만 보통 시험기간에 일찍 잠자는 사람은 시험을 포기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 친구들과 다른 점은 그 친구는 성적이 항상 잘 나왔다. 당시에는 잠을 자도 시험을 잘 보는 엄청 똑똑한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더 멋있는 사람인 거 같다. 나는 시간에 쫓겨 벼락치기를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자신만의 우직한 생활패턴을 만들어 시간 위에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같은 반 1학년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내내 성적이 좋았고 잠도 일찍 잤다. 그 친구에게 공부 잘하는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다고 대답했다. 그것 말고도 매일 기숙사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남들은 모르지만 그 친구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학창 시절처럼 똑같이 시간관리를 잘하고 지낼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안타깝게도 시간관리를 잘 못하고 있다.


    나는 매일 12시에 잠자고 싶은 사람이다. 이유는 단순한데 하루가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니깐 잠은 24시 전, 즉 오늘 안에 잠자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잠잔다면 내일의 나는 오늘처럼 똑같은 24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24시간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오늘 하루를 내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계획을 다 끝내고 자는 게 오늘 삶의 목표다. 농담이 아니라 내 계획을 다 끝내고 12시 전에 침대에 눈감고 누우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잠든다. 지금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12시 전에 자는 건 끽해야 2~3번 정도 12시 전에 잠자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12시에 잠자려면 오늘 할 일을 다 끝내야 하는데 그렇게 완벽한 하루가 자주 없다. 왜냐하면 그냥 게을러서 그렇다. 생각하는 계획들을 퇴근 후 집에 와서 바로 실천하면 되는데 딴짓하면서 계속 미루다 보면 밤 10시쯤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난다. 그제야 부랴부랴 해보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해야 함은 그 시간에 모두 다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선택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고 12시 전에 잠잘 것인지 아니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밤 12시 넘어서 늦게 잘 것인지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잠들기보단 해야 할 일을 끝내놓고 자는 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서 결국 늦게 잔다. 뒤늦게 부랴부랴 할 일을 끝내놓고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 알람을 맞추고 나서 혼자 나지막이 내뱉는다. "12시에 잠자기로 했는데.." 그리고 그 작은 여파는 내일의 나에게 피로감을 안겨준다. 이렇게 시간을 놓치다 보면 악순환의 반복이 된다.  


    그런 경험을 몸으로 느낀 이후로 주변에 시간관리를 잘하거나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오늘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12시 취침에 도전하고 있다. 어제가 실패했다고 오늘이 반드시 실패한다는 법은 없기에 나의 오늘 24시간 취침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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