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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 Sep 13. 2024

내 공간이 방에서 집으로.


    자취한 지 3달째, 혼자 살면 왠지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자취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집에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누나들과 같이 살았을 때 나를 부르거나 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방문을 닫아도 들리는 대화소리, TV 소리, 통화 소리도 가끔 시끄러웠다. 나는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빠져들고 있을 때 방해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나들이 나를 이리저리 불러댈 때면 나는 예민해져서 알게 모르게 짜증을 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전혀 없다. 방문 너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산 헤드셋을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 집은 너무나 고요하다. 글을 쓰는 있는 지금도 에어컨 소리 말고는 내 귀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고요함을 깨는 전화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한 내 시간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에 있는 모든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됐다.


    나는 누나들이랑 함께 살 때, 내 방이 따로 없었다. 내 방이 생긴 건 큰누나가 결혼하고 나서였다. 그때 나는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다. 왜냐하면 내 방이 있다는 건 내 맘대로 꾸밀 수도 있고 채울 수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긴 내 방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 포스터가 걸려있고 내가 모은 배찌와 굿즈, 전시회에서 모은 엽서, 향수, 고전문학과 책들, 넓은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과 노트북, CD, 옷, 기타 물건 등등 내가 좋아하고 필요하고 갖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갔다. 나는 내 방이 생긴 이후로 내 방 책상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울 때면 너무 좋았다. 내 공간에서 휴식하고 있는 편안한 기분, 자신만의 방이 있다는 건 그만큼 정말 좋은 일이다. 자취하고 나니 그 공간은 방이 아니라 집 자체가 됐다. 내가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졌다. 더 좋은 일이 생긴 것이다. 최근에는 흔들의자와 CD플레이어를 샀다. 밤마다 창밖이 훤히 보이는 흔들의자에 앉아 CD로 재생된 음악을 들으면서 독서를 즐기고 있다. 전에는 방이 좁아서 살 수 없던 흔들의자인데 이제는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꿈에 그리던 흔들의자 독서 낭만에 심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뿐만 아니라 이사하고 나서 사소한 물건조차도 모두 내가 직접 고르고 사야 했는데 그렇게 신중하게 산 냐 취향들이 조금씩 조금씩 내 집에 쌓여가고 있다. 나 대신 나를 나타내주는 물건들로 채워진 이 집이 정말 맘에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살게 되면 완전한 자유가 생기게 된다. 내가 새벽에 방 불을 켜도, 코를 골아도, 스피커모드로 전화통화를 해도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도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녀도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거실에서 뿌려도 내 방이 어질러져있어도 내 행동에 대해 잔소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망나니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살았을 때도 그렇고 기숙사생활을 해본 사람으로서 타인과 같이 살다 보면 배려하고 타협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온전히 나만의 생활을 즐기기가 조금 어렵다. 또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라던가 성격 그리고 생활방식이 점점 확고해지는데 그럴수록 타인과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자취를 하게 되면 그런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서 좋다.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앞으로도 내 삶의 방식대로 이 집에서 자유를 더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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