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승 4시간전

사람은 직접 느껴봐야 안다.



    오랜만에 치과에 가야 했다. 앞니로 닭강정을 과감하게 깨물다가 유지장치가 떨어진 것이다. 교정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치아 교정을 하고 나면 앞니 뒤에 붙이는 철사같이 생긴 유지장치를 붙인다. 유지장치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이빨이 원래자리로 돌아가는 성질 때문인데 이게 떨어지면 이빨이 조금씩 교정 전으로 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유지장치가 떨어지면 가능한 한 빨리 치과에 가는 게 좋다.  평일 반차를 쓰고 후다닥 치과에 갔다.


    떨어진 지 3일 만에 치과에 온 나는 철사를 붙이는 건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철사 붙이는 건 금방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입에 충치가 생겼다. 그것도 4개나 말이다. (왼쪽 어금니 위에 1개 아래 2개, 오른쪽 어금니 위에 1개) 오른쪽은 경과를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셨고 왼쪽은 다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이래서 치과 올 때마다 무섭다. 올 때마다 이빨에 무언가 하자가 생긴다. (평소에 양치질을 니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 올해 초에도 치과에 왔었는데 이빨치료한다고 돈 좀 썼다.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터졌다. 충치 3개라니 충치 치료에 갑자기 큰돈 나가게 생겼다.


     내 충치의 원인은 이랬다. 교정 유지 장치가 사실 1개 더 있는데 가철식 유지장치라고 입 안쪽으로 끼는 교정장치다. 이것도 이빨 전체라인을 잡아줘서 교정 후 이빨이 원래자리로 돌아가는 걸 막아준다. 참고로 큰누나가 다니는 치과에서 교정을 했는데 큰누나는 교정이 끝난 뒤에도 이 유지장치를 매일매일 무조건 끼라고 나에게 강조했다. 나중에 이빨 틀어지면 다시 교정해서 돈이 또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나는 앞니 뒤에 있는 철사가 떨어지면 그때 이빨이 서서히 틀어지니깐 그럴 때 가철식 유지장치를 사용해서 틀어지는 걸 막아주는 용도라고 생각했다. 바로 옆에 치위생사인 큰누나가 그렇게 강조했는데 나는 듣지 않았던 것이다. 교정이 대략 7년 전에 끝났는데 이 장치를 착용한 건 50번도 안될 정도로 안 꼈다. 심지어 장치를 너무 안 껴서 이빨이 틀어졌다고 유지장치를 최근에 새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때도 치과에서 어금니 쪽이 틀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살다 보면 틀어지는 거지 어떻게 평생 유지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또 착용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의사도 아닌데 무슨 개똥철학으로 이런 태도를 유지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 어금니는 교정 전으로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어금니 사이에 공간이 생겨 이물질이 끼기 시작했다. 나는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치실을 썼다. 하지만 치실을 쓰다 안 쓰다 대충 사용하다 보니 어금니사이에 안 빠진 이물질이 썩어 충치를 만든 것이다. 그것도 4개나 말이다. 결국 내가 장치를 열심히 끼지 않았고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나는 초록색 천 아래 입을 벌린 채 눈을 감고 큰누나의 잔소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장치를 끼지 않는 나 자신을 반성했다. 깨닫기엔 이미 늦었다. 나는 충치를 제거해야 했다.


     1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치과 방문은 2시간이나 넘게 치료를 받았다. 인접면 충치라서 충치 치료하는데 꽤 걸린 것이다. 턱이 아팠다. 집에 가고 싶었다. 다시는 치과에 오고 싶지 않았다.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집에서 치과까지 왕복 2시간 거리로 멀기도 했다. 치료가 끝나고 이를 씌워야 하기 때문에 다음 주에 다시 오라고 했다. 비싼 충치비용을 할부로 긁고 집 가는 길 잇몸이 너무 시렸다. 돈도 깨지고 잇몸도 아프고 턱도 아프고 앞으로도 이렇게 대충 관리하면 또 어금니가 썩는다는 사실에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나는 충치가 생기지 않게 양치질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부터 나는 미세모칫솔로 양치질을 한 다음 치간칫솔로 청소를 하고 치실로 마무리를 한다. (미세모 칫솔과 치간칫솔을 이번에 새로 구매했다.) 평소보다 양치질하는 시간이 2배나 늘었다. 하지만 충치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만 했다. 귀찮아서 안 낀 가철식 유지장치도 자기 전에 끼고 있다. 평소라면 전부 다 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있다. 큰누나가 귀에 피날정도로 강조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직접 아프고 돈도 많이 쓰고 몸으로 고생 좀 하고 나니깐 바로 교정돼버린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역시 사람은 직접 느껴봐야 아는구나.



이전 10화 12시에 잠자고 싶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