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준비하면서 버릴 물건이 많았다. 지금 집은 누나들과 함께 살았는데 큰누나는 2년 전에 결혼해서 나갔고 그 이후로 작은누나와 친구처럼 둘이 잘 지내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각자 따로 살기로 했다. 그래서 작은누나도 나 이사하기 한 달 전에 짐을 챙기고 나갔다. 5년 동안 3명이 함께 생활했던 집이다 보니 잡동사니가 많았다. 나중에 누나들이 와서 정리하기는 했지만 일단 혼자서 짐정리를 시작했다. 버리기 아까운 계륵 같은 물건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다. 결국 물건들은 죄다 헤집어 놓기만 하고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버릴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챙겨가야 할 물건들만 챙기기로 했다. 안 쓰는 물건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어차피 지금도 몰랐거나 안 쓰던 물건들이 이사 가서도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마치 옷장에 2년 이상 안 꺼내져 먼지만 쌓인 옷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짐 정리를 하니 짐 싸는 게 수월해졌다. 그리고 버릴 물건이 담긴 재활용봉투는 계속 쌓여만 갔다. 처음에는 물건을 버릴 때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계속 샘솟는 물건들 어쩌면 쓰레기를 보고 있다 보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분명 저 물건들에도 추억이 담겨있을 텐데...
물건에 담긴 추억이 저 멀리 우주 어딘가로 사라져 가는 기분을 느꼈다.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향수를 맡으면 그때의 그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그런 매개체가 이제 내 세상에서 사리진 것이다.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겠지만 상기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없음의 차이는 크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버려야 했다. 새 집에 함께 갈 수 없었다. 이사할 집이 컸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작은 추억이 사라지는 기분, 나는 익숙해지기로 했다.
사라지는 것과 반대로 이사할 집으로 갈 내 물건들이 있었다. 소장하고 있는 고전문학, 그림공부를 위해 산 서적들, 지브리 굿즈, 천공의 성 라퓨타 대형 포스터, 향기에 빠지고 싶어서 산 향수들, 일본 여행 가서 산 액션가면 인형, 고심하면서 산 재킷, 후드 등등 다 샀을 때의 추억이 생각났다. 그때의 감정은 지금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새집에 가면 누나들과 뒤섞인 물건들이 아닌 온전히 내 물건들로만 채워질 것이다. 내 취향으로 공간을 담담하게 눌러 담을 생각에 기쁘다. 내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지금처럼 쭉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