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하루의 시작.

by 고순


일요일 아침 눈을 뜬다. 알람 없이 일어난 아침은 개운하다. 핸드폰 시계를 보자 시간을 12시, 아침이 아니라는 사실과 오전에 일어나지 못한 아쉬움에 인상을 찡그린다. 잘 잤으면 된 거야라는 마음으로 흐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거실에 비쳐오는 햇살이 하늘이 만들어 낸 선명한 세상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양치질을 한다. 다시 거실에 나와 베란다 문을 열고 창문까지 활짝 연다. 세상이 내뿜는 생생한 공기가 몸으로 느껴진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생생한 공기가 코를 타고 폐까지 깊게 들어 올 정도로 마신다. 겨울의 공기는 아직도 차갑지만 방 안의 따뜻하고도 쾌쾌 묵은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 좋아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는 양치질을 마저 끝내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뒤척인 잠에 망가진 머리가 거울 속으로 보인다. 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또렷하게 쳐다본다. 화장실 조명에 얼굴 피부가 적나리하게 드러나는 걸 보고 놀란다. 그는 늙음을 부정하지 않기로 한다. 그는 양치질을 끝내고 가볍게 물세수를 한다. 그다음 얼굴에 로션을 부드럽게 펴 바른다. 그는 로션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로션은 일어나서 자기 전에 2번밖에 바르지 않는다. 얼굴에게 주는 유일한 영양분일 텐데 아끼고 싶지 않다.


그는 거실 노트북 앞에 앉는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방안에 가득 차있는 걸 몸으로 느껴진다. 이제 보니 열린 창문으로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도 들린다. 자동차 소리인지 사람 지나가는 소리인지 정확히 형용할 수 없는 작은 소리도 들린다. 창문을 닫으면 전혀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감각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는 창문하나 열었을 뿐인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노트북에 일기장을 꺼낸다. 일기장에 오늘 날짜를 적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담백하게 써 내려간다. 방안에는 경쾌한 키보드소리가 울려 퍼진다. 10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는 약간의 갈증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물 한잔은 몸속에 뭉쳐있는 세포를 깨울 수 있다. 그는 투명한 컵에 물을 따른다. 적당히 따른 물은 목을 타고 중력에 따라 점점 아래로 마침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그는 식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연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연락온 게 하나도 없다. 애꿎은 휴대폰을 몇 번 만지더니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다시 베란다 앞에 서서 공기를 크게 들어마신다. 6층에 사는 그는 아파트 길로 걸어 다니는 사람과 차들의 움직임, 푸른 하늘을 다시 본다. 구름하나 없는 맑은 하늘은 왠지 심심하기만 하다. 태양은 어디로 갔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장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있으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11kg 아령을 손에 들고 스쾃을 한다. 하체 근육과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이 거울 속에 그대로 비친다. 아령 때문에 느껴지는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횟수가 올라갈수록 허벅지가 땅겨온다. 그는 거울 앞에 끙끙거리는 자신의 표정을 본다. 못난 표정을 지어도 딱히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위아래 움직이는 허벅지 근육에 집중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는 스쾃 20개를 끝내고 몸에 타오르는 약간의 열기와 뜨거운 감정을 차분하게 느낀다. 호흡은 살짝 거칠어졌지만 기분 좋은 헐떡거림이다. 다시 거실로 나가자 창밖의 공기가 춥지 않고 시원해서 좋았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살이 트지 않기 위해 바디로션을 손에 바르고 다리에 비볐다. 바디로 션을 바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름진 무언가를 다리에 바르는 기분은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피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열심히 발랐다. 발등 종아리 정강이 허벅지 안쪽 바깥쪽까지 로션이 덮여있는 게 느껴진다. 그는 두꺼운 양말을 신고 튀지 않는 검은색 바지와 적당한 후드와 바람막이를 입는다. 빨리 달리기를 하고 나서 샤워하고 싶다. 그는 밑창쿠션이 거의 다 빠졌지만 아직은 쓸만한 러닝화를 신발장에서 꺼낸다. 그는 러닝화를 신는다. 러닝화의 여유로운 공간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진다.


문을 열고 밖을 나서자 산 아래로 겹겹이 쌓인 건물들이 눈에 보인다.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가 주는 묘미, 주변 풍경이 단조롭지 않은 장점이 있다. 그는 하얀색 시멘트가 명치까지 오는 난간이 쭉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다시 난간 너머 펼쳐진 세상을 바라봤다. 수많은 집들과 그 뒤에 놓인 산,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이 주는 묘한 감정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삭막한 도시는 인사 건네는 게 낯설다. 조용히 오른쪽 구석지 끝으로 선다.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1층까지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문 앞에 서있었다. 그는 이웃을 잘 모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그는 그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아파트 공원으로 걸어갔다.


연식이 된 아파트 주변에 어르신이 많이 지나다녔다. 주말이라 신난 아이들도 보이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도 보였다. 그는 걸어가면서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여 굳어진 몸을 풀었다. 얼른 뛰고 싶은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들떴다. 300미터 트랙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진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 가운데 배드민턴장과 각종 운동기구와 벤치,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가 있었고 빙글빙글 도는 트랙에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이 든 어르신의 걸음이 느리고 생동감이 없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트랙을 가로질러 운동기구 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신발끈을 꽉 묶었다. 신발끈이 발을 감싸고 있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그는 다시 서서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한다. 철봉 앞으로 몸을 움직여 제자리 점프한 다음 철봉에 매달린다.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히고 봉에 가슴을 밀착하기 위해 등과 손에 힘을 강하게 준다. 팔을 당길 때의 등근육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다시 팔을 천천히 핀다. 쫙 벌어지는 견갑골의 감각을 느낀다. 같은 동작을 몇 번 반복하던 그가 지면으로 내려온다. 그는 발목과 손목을 부드럽게 돌리더니 트랙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휴대폰을 열어 달리기 어플을 킨다. 달리기 어플에 시작버튼을 누른다. 3,2,1 시작 소리와 함께 그가 지면을 밀고 앞으로 나아간다. 폭이 2미터 정도 돼 보이는 트랙 위로 걷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피하면서 달린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휘감자 그는 살짝 춥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몸동작을 크게 움직이며 발바닥을 정직하게 바닥을 밀고 앞으로 계속 뛰었다. 주변 세상이 뒤로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몸이 만들어낸 바람이 코를 타고 들어왔고 숨의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머릿속에 잡생각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런 잡생각을 잊기 위해 그는 지면에 느껴지는 발바닥 감각에 집중한다. 잡생각은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는 3km 뛰었다는 휴대폰 알람소리와 함께 달리기를 멈춘다. 벤치에 앉아 모자란 숨을 거침없이 호흡한다. 허리를 숙여 꽉 조여진 신발끈을 풀어 신고 벗기 편한 정도가 되도록 여유롭게 끈을 다시 묶었다. 얼굴에 솟아나는 땀을 손등으로 가볍게 닦는다. 그는 벤치에 기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없는 하늘은 아까와 비슷하지만 무언가 다르다는 감정을 마음속으로 느끼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달리기 하면서 느낀 만족감과 정리되지 않은 호흡을 거칠게 내뱉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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