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온전히 느끼려는 마음가짐.

by 고순




한 달 전에 본 영화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오늘 다시 관람했다. 영화 제목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스즈메는 남편을 해외출장 보내고 애완 거북이에게 밥을 주는 등 평범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파이 모집이라는 전단지를 보게 된다. 너무나도 평범하게 생긴 스즈메는 스파이로 합격하게 되고 그날부터 스파이활동을 시작한다. 그녀의 임무는 최대한 평범하게 지내기, 스즈메는 그런 마음으로 무료하게 보낸 일상을 스파이 임무라고 생각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평화로운 스파이활동도 잠시 마을 바닷가에 시체가 떠밀려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일본 공안부가 마을의 스파이가 있다고 판단해 마을을 조사한다. 결국 마을의 스파이들은 공안부에게 발각되어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신참인 스즈메는 공안부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마지막 임무를 건네받고 스파이들은 마을은 떠난다. 스즈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블랙코미디 영화로 전체 분위기가 따뜻하고 엉뚱하다. 깊은 울림이 있는 내레이션과 2000년대 초반의 일본 시골 분위기, 동화 같은 연출이 매력 있어서 좋았다. 일상을 다시 소중하게 느낀 스즈메를 보고 내 일상도 소중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내 취향이라서 그랬을까. 보고 난 후에도 잔향이 오래 남아 은연중에 영화가 자꾸만 떠올랐다. 스즈메 역을 한 우에노 주리가 귀엽고 이쁜 것도 한몫했지만 또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려 다시 영화를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2회 차로 다시 봤을 때는 평범함을 귀엽게 즐기는 스즈메보다는 스파이활동의 발각으로 마을과 주변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스즈메의 감정변화가 자세히 보였다. 스파이는 주변사람들과 언제 이별할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스즈메는 혼자 이런 말을 한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이별은 대단한 게 아니라 한쪽이 죽고 난 후 처음으로 '그때 그게 마지막이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뿐 이별은 다 그런 건가. " 이별에 대한 스즈메의 생각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미리 말했다시피 스즈메는 마을과 주변사람이랑 이별하지 않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주변관계와 내일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스즈메가 친구 쿠자쿠를 만나러 가는 엔딩장면이 이제야 이해됐다. 주체적으로 일상을 헤쳐나가려는 노력과 삶을 사랑으로 대하려는 희망찬 태도가 더 와닿은 것이다.


일상을 사랑하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파이활동하는 스즈메처럼 나도 요즘 일상을 다시 느끼는 중이다. "휏휏휏휏휏" (작 중 스즈메의 귀여운 웃음소리, 흉내 내면 기분이 좋아진다.) 걷다가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하늘색 도화지 위에 떠있는 구름이 아름답게 보였다. 구름의 질감, 크기, 다양한 형태 제각기 다 다르게 생겼는데 하얗고 부드러운 구름의 포근함이 어떤지 상상하기도 했다. 평소에 고개를 올려다보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특히 도시는 건물이 높아서 하늘을 보려면 턱을 더 높게 들어야 한다. 회색빛으로 가득 차 있는 지상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고개를 내리고 다닌다. 그와 대비되는 푸른 하늘은 지상에 분주한 따위는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한없이 평온하기만 했다. 하늘과 땅은 전혀 다른 세계가 맞물려있는 상태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겨울은 저 멀리 떠나고 찾아온 봄, 풀린 날씨에 싱그럽게 피어난 꽃과 무성해지는 나무를 유심히 보기도 하고 가끔은 만져보고 향기도 맡아본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신기했다. 사람들이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기피하게 된 것에 대해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길거리에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토바이, 자동차 소리가 시끄러워서 나도 듣기 싫을 때가 있는데 인간보다 청력이 4배 이상 좋고 예민한 강아지의 귀는 지금 괜찮은 걸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일상을 둘러보니 다양한 감정들이 샘솟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이 하루 중에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 출퇴근 말고는 거의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밖에서 책 읽는 게 아니면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있다. 그랬더니 퇴근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배차시간이 이상한 대중교통을 이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놓치면 한 정거장정도 걸으면서 나긋하게 산책하기도 하고 정류장에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는 둥 평일 저녁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현대인과 다르게 과거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고 자연과 주변을 자연스럽게 보고 살았을 것이다. 고전문학을 쓴 작가들은 일상에 사색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문학으로 피어낸 감성의 깊이가 깊은 건 아마도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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