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 마을로 가는 길.

by 고순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오후 5시 반, 골짜기 마을로 향하는 순환버스가 역 앞 정류장으로 오고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앞문 쪽으로 모여든다. 중구난방으로 모인 사람들은 버스 의자에 앉기 위해 사람들의 저항을 약하게 몸부림치며 하나 둘 올라탄다. 삐걱거리고 느린 롤러코스터 같은 버스를 서서 가는 건 꽤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의 애처로운 몸짓이 남일 같지 않다.


뒤늦게 탑승한 나는 자리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드문드문 서있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 맨 뒷자리에 겨우 몸을 기댔다. 문이 닫힌 버스는 신호등 건너기 전 바로 우측을 돌아 첫 번째 언덕으로 향한다. 버스기사님이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을 때면 나는 용의 꼬리처럼 출렁거렸다. 몇 번의 움직임과 멈춤, 그리고 흔들거림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은 멀미를 만들어냈고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한계점을 넘은 감각이 약간의 짜증으로 변했다.


‘도대체 이 동네는 왜 산을 뚫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언덕길을 만들어놓은 걸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나는 정신 줄 잡기도 바빠 금세 잊어버렸다. 이 버스와 함께 이 길을 근 5년 동안 잘 다녀왔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지겹게 느껴졌다. 섬사람 출신인 내가, 뱃멀미도 별로 없는 내가, 이 동네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여기 사는 사람들은 뱃멀미를 절대 안 할 것이다. 다음번에는 평지로 펼쳐진 동네로 꼭 이사 가야겠다.


역에서부터 4번의 길쭉하고 가파른 고개를 견뎌야 도달하는 우리 집. 꼬부랑거리고 피로한 이 길은 싫지만 언덕 위의 우뚝 서있는 우리 집은 좋다. 언덕 아래로 탁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제법 괜찮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많지 않은 우리 동네는 빌라와 개인주택들이 층층이 섞여 입체감과 볼거리를 자랑한다. 그 뒤로 넓게 펼쳐진 산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전체적인 풍경이 뭐랄까. 마치 딱 거기까지만 구현되어 있는 고화질 FPS 게임 속 맵 같다. '산 너머로 아무것도 구현되지 않는(영화 13층처럼) 무의 공간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다행히 그 산 뒤로 매일 태양이 출퇴근하고 있다. 선홍색 빛을 내뿜으면서 태양이 퇴장하는 모습은 아주 장관이다. 멀미 나는 버스와 언덕길을 힘겹게 넘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우리 동네에서 느낄 수 있는 고진감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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