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조화롭지 않는 삶.

by 고순



잠깐 비가 그친 저녁, 창문을 열어놨더니 벌레가 들어왔다. 거실 전등 아래로 빙글빙글 맴돌던 모습을 보고 당연히 나방인 줄 알았다. 녀석을 잡기 위해 노트를 들고 휙 하고 휘둘렀다. 의자 위로 떨어진 벌레는 나방이 아니라 귀뚜라미였다.


"귀뚜라미가 저렇게 유연하게 날았던가. 너는 전등에서 어떤 환상을 봤길래 그렇게 춤을 추었니."


얼빠진 녀석은 선반에 놓인 장식품처럼 가만히 있었다. 깔끔한 바닥을 목표지점으로 조준한 다음, 또 한 번 휘둘렀다. 그런데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귀뚜라미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녀석은 의자 옆 책상 위 키보드에 있었다. 휘두른 것과 전혀 반대 방향인 곳에 있다니 물리법칙이 어긋나버린 기분이었다. 다시 바닥으로 내치기 위해 스윙, 이번에는 명중이었다. 녀석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녀석을 고지서로 몇 대 툭툭 때렸다. 채찍질에 고통스러웠는지 더듬이만 약간 움직이는 모습이 징그러웠다. 나는 고지서로 더 때리려다가 굳이 바닥에 짓눌려 죽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뒤처리를 하기 위해 휴지를 가지러 갔다.


휴지를 몇 장 뜯는데 몸이 멈칫했다. 손에 강하게 힘을 주어 녀석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야 하는데 휴지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을 생각하니 불쾌하면서도 무서웠다. 비상한 머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무장갑을 생각해냈다. 고무장갑을 착용하면 촉각이 덜 느껴지겠지. 몸은 주방으로 향했다. 오른손에 고무장갑을 착용한 다음, 몇 칸 뜯어진 휴지를 다시 손에 들었다. 불현듯 내 모습이 겁쟁이 같아 보였다. 내가 손톱보다 작은 벌레, 움직이지도 못한 녀석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한다는 게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벌레들이 득실거리던 촌에서도 16년을 잘 살아왔는데, 그때의 자유롭고 용기 넘치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지. 지금은 휴지로 감싸는 것조차도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되다니... 도시 사람이 다 됐다. 아니 겁쟁이가 된 걸지도..."


그 순간 나의 마음속의 모순을 발견했다. 내 방은 화분 하나 없이 인공물로 가득한 공간, 벌레 하나조차도 용납 못 하는 자연과 철저히 분리된 장소였다. 자연예찬론자인 내가, 나 말고는 생명력 하나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 이렇게 혼자 지내고 있다. 어쩌면 자연은 내게 함께할 장소가 아니라 미술관처럼 고상한 취미 같다. 진정한 자연은 벌레가 득실거릴 텐데, 난 아직 그들과 조화롭게 지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휴지로 짓눌러 죽인 귀뚜라미 시체는 변기 속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 소리만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방안에서, 귀뚜라미의 흔적을 지우려고 휴지에 소독제를 묻혀 키보드와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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