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화장실에 손세정제가 다 떨어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손 세정제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없으니깐 네 존재가 강렬한지 이제야 알았다.
나는 집에서 손을 자주 씻는 편이다.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는 건 물론이고, 설거지를 한 뒤나 헬스장에서 돌아온 후, 렌즈를 끼기 전, 씻기 전, 그리고 자기 전에도 습관적으로 손을 씻는다. 막상 적고 보니 내가 이렇게 청결한 사람이었나 싶다. 씻는다는 건 귀찮을 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좋은 행위다. 씻고 나서 느껴지는 깨끗함, 물을 타고 배수구로 사라져 버린 세균과 불순물을 생각하면 내 피부에 감싸고 있는 부정적인 기운도 같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샤워는 말할 것도 없이 감정의 깊이가 한층 더 깊다. 죄를 씻어내기 때문이다. 샤워할 때 가만히 서서 샤워기에 쏟아지는 물을 맞는 것은 속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내가 세상에 지은 죄가 없는지 금방 씻기 바빠 물세례를 깊게 못 느껴 본 지 좀 된듯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손세정제 없이 다른 녀석들을 사용해 근 일주일을 버텼다. 그런데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폼클렌징은 손을 닦기엔 아까운 기분이고, 바디워시는 손을 닦아보니 개운하지 않아서 찝찝하다. 그래서 손 세정제 네 생각이 자꾸 났다.
다이소에 들러 너를 사 오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입만 나불거리고 있다. 집 근처에는 다이소가 없어 역 근처에 있는 다이소에 가서 사야 했다. 하지만 그 역은 출근길과는 정반대였고, 서울을 나갈 일이 있을 때만 가는 길이다. 서울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사 오자고 매번 마음을 먹지만 귀가시간이 너무 늦어 못 사온 적이 몇 번 있다. 약속 있는 날이 아니면 그 역으로 갈 일이 없기에 오늘도 손세정제를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가 만들어 낸 보드라운 거품으로 손을 말끔히 씻고 싶었다. 나는 퇴근길에 더는 참지 못해 집 앞 롯데슈퍼에서 손세정제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쓰던 손세정제는 '아이! 깨끗해'였는데 다행히 롯데슈퍼에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정가는 8990원 할인가로 3990원이었다. 4000원인데 10원 차이로 앞자릿수를 3으로 만들어 심리적으로 더 싸게 느껴지게 만드는 가격표다. 그런데 이게 원래 4천 원정도 했었나. 다이소는 이 금액보다 저렴했던 거 같은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이소에는 3000원에 팔고 있었다. 역시 다이소다. 가격이 착하다. 그런데 롯데슈퍼 손세정제 정가가 8990원이라니, 역시 정가라는 건 믿을 게 못 된다. 손세정제 250ml짜리를 만원 가까이 주고 살 사람이 어딨을까. 비누와 다르게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눌렀던 손 세정제. 이제 보니 너 나름 비싼 몸이었구나.
롯데마트와 다이소의 가격차이는 990원, 난 당장 필요했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사버렸다. 손세정제를 구매하고 집에 오는 길,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손세정제인데 나는 집에 가서 얼른 사용할 생각에 신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손세정제의 머리를 2번 눌렀다. 손 위로 거품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나는 가만히 서서 두 손에 거품을 구석구석 묻혔다. 그다음 흐르는 물에 손을 부드럽게 씻었다. 거품과 물이 세면대 배수구로 졸졸 기분 좋게 빨려 들어갔다. 내가 기대했던 깔끔하고 편안한 감각이 바로 이거였다. 내 두 손을 수건으로 조용히 닦으면서 생각했다. 오늘 롯데슈퍼에서 손세정재를 사기 위해 낸 3990원 중에 990원은 내 게으름의 값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