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너머로 보는 세상.

by 고순

작년 여름 비가 내리던 날, 혼자 의자에 앉아 사색에 빠진 적이 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창문 앞에 있었는데 창문에 빗방울이 잔뜩 맺혀 창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미닫이가 아닌 어닝형으로 창문이 되어있었기에 창문을 열어도 창밖을 온전히 보기에는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다. 창밖 풍경을 유리 너머로 밖에 볼 수 없는 현실에 슬픔을 느꼈다. 이제 보니 15년 정도 써온 안경,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진보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쭉 안경을 써야 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와 닮아있었다. 창문 너머 바라보는 세상과 창문 없이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나는 유리(안경알) 너머로 평생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나는 눈이 나쁜 것을 한탄하기보단 안경 알을 깨끗하게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경을 대충 쓰고 다니는 건 세상을 성의 없게 바라보는 마음인 거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안경을 쓰려고 보니 누가 칼로 그은 것처럼 안경 왼쪽 렌즈 7시 방향에 5mm 정도 큼지막한 흠집이 생겼다. 언제, 어떻게, 왜, 생겼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안경알에 잔흠집도 많이 생겨있었다. 안경을 따로 관리하지 않고 2년 넘게 써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치 큼지막한 흠집이 "안경을 바꿀 때가 됐다."라고 내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만 같았다.


안경을 착용한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안경 공부를 했다. 전면부 길이부터 동공 간 거리와 브릿지를 계산해 보기도 했고, 렌즈는 굴절률에 따른 금액과 어떤 브랜드가 합리적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mm 차이를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물론 이렇게 이론적인 것보다 안경점에 가서 직접 써보고, 안경사의 설명 듣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렌즈 바꿔치기, 무지한 사람한테 바가지 씌우기 등의 후기를 많이 접하다 보니 내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보이는 안경점을 찾아 어찌저찌 안경을 맞췄다.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새 안경은 그냥 똑같은 안경이었다. 바꾸기 전이랑 큰 차이가 없었다. 기존에 쓰던 안경은 얇은 뿔테였고 지금 바꾼 것도 똑같은 뿔테였다. 돈을 좀 주고 아세테이트 소재로 된 뿔테를 샀지만 그 덕분에 괜히 안경만 더 무거워졌다. 렌즈를 맞추기 전에 써본 안경은 멋쟁이처럼 보였는데 막상 렌즈를 맞추니깐 못난이가 돼버렸다. (시력이 꽤 나빠 안경을 쓰면 눈이 콩알만 해진다.) 또 4년 전부터 시력의 큰 변화가 없어서 같은 도수로 맞췄다. 큰 차이 없는 내 얼굴을 보니 근 2주간의 노력에 비해 보상이 짜다고 할까. 약간의 허탈감을 느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안경이 매우 만족스럽다. 전에 비해 안경 알 크기를 줄였는데 눈에 딱 맞는 사이즈 같아서 마음에 들었고, 두툼한 뿔테는 진중하고 차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신경 쓰였던 안경 무게도 적응하니깐 별거 아니었다. 나만 아는 무언가가 얼굴에 느껴지는 거 같아서 거울을 볼 때마다 혼자 흡족하곤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렌즈였다. 이전의 안경을 다시 써보니 탁하고 초점이 묘하게 흐릿한 느낌이 들었다. 눈이 지금 안경을 적응하고 나니 이렇게나 큰 차이를 지금에서야 제대로 느낀 것이다. 지금 안경은 정말 선명했다.


안경 맞추려고 노력한 2주간의 시간들이 요란스러웠지만 깨끗하고 새로운 눈을 얻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제는 안경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린 내가 현대 과학 발전에 고마움까지 느낀다. 그런데 전자기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된 거니깐 이거 완전 병 주고 약주고다. 아닌가 원래 나빠질 눈이었나. 인류의 난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내 시력에도 철학이 담겨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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