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란 게 있기나 할까
나는 예전부터, 내가 선택한다고 보여지는 많은 것들이, 사실 내가 속한 사회와, 문화와, 교육.. 그리고 내가 서 있는 환경이 선택하는 것이지 나라는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딱히 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나의 이런 생각이 사피노자의 철학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피노자는 모든 것이 자연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했다. 다만 그 인과성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했다' 라고 단순화 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인간의 행동은 모두 원인 (필연성)에 의해 결정되고 자유는 전혀 없다. 흔히들 자유라고 믿는 것에도 사실은 원인이 있는데, 그것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자유라고 상상하고 마는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했다. 그러므로, 그 원인이 무엇인가 알려고 하는 것, 그 인식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자유라고 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선한 것은 자신의 의지 때문이고, 악한 것은 그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피노자는 대개의 사람들이 단지 '악인' 이 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라고 지적했다. 즉 사람들이 지금까지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진정 주체적인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주체적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자유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어떤 원인으로 그렇게 발현되었는지, 그 "원인" 이 되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조절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롭게' 사는 법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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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의 '선택' 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돌이켜 보았다. 사실 자유의지라고는 거의 없었다.
내가 속한 사회, 시스템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들, 예를 들어
'규모가 크고 안정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학교 / 회사에 속하라'
'돈은 많이 받을 수록/ 모을수록 좋지'
'안전한 곳이 좋지'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
'나의 최대한 편안한 노후'
'주변인들에게 도움이 되자'
'주변인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자'
인간의 뇌-내분비계-신경계 간의 상호작용으로서 나오는 반응:
'정신적 스트레스는 괴롭다.'
'무시받는 것이 괴롭다'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이 끔찍하다'
등등
에 따라 내 만족도가 최고가 되는 선택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다.
왜 어떤 사람은 회사를 계속 다니고, 어떤 사람은 회사를 그만둘까?
개인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날 갈구는 상사가 있느냐 없느냐, 날 이해하는 동료가 있느냐 없느냐, 남들에게 인정받는 결과물이 있느냐 없느냐, 모아 놓은 저축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냐 등등
나의 선택은 환경과 내 몸의 시스템과 내가 믿는 가치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다.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내 가치가 무엇인지, 나의 환경 요소가 무엇인지 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움의 첫번째 발걸음일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원인 요소들을 바꿈으로서 나의 선택이 달라질 수 밖에 없게끔 게임의 판을 다시 짜는 것이 두번째 발걸음일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인생의 downhill 은 그 사람이 '필연적으로 정해진 선택' 을 감정적으로 외면하고 충동적으로 오답을 선택했을 때 나온다. 그걸 자유의지로 착각할런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은 오히려 자기가 속한 사회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 & 강한 충동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껏 내가 '선택' 을 잘 해 왔기에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난 내 세계의 필연성을 나름대로 잘 이해하고, 감정에 휘둘려 정해진 선택지를 외면하고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