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행을 막아준 구세자
유학 중 만난 지하철 핸드폰 영웅 외에 또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예상치 못한 외상을 받아준 식당 직원이다.
때는 4학년 1학기였고, 나는 졸업 작품 수업의 조사 과제를 하기 위해 혼자 퀸즈의 한 번화가에 방문한 적이 있다. site analysis (장소 조사) 후 역 근처의 한 몽골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문제는 식사를 다 하고 결제할 때 발생했다.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먹으면서 다른 손님들이 결제 문제로 그냥 나가는 것을 보았고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했었다. 무슨 QR코드를 찍어서 그것을 통해 결제를 하라는데, 여러번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일단 나는 그 플랫폼에 가입도 돼있지 않았고 한국 은행과 연결하려니 안 됐다.
어떡하지. 완전 멘탈붕괴였다. 현금도 없는데 이러다 같이 경찰서 가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부터 직원은 왜 먹기 전에 카드 결제가 안 된다고 언지를 주지 않았지? 이건 식당 책임도 있는 거잖아! 하는 원망까지 짧은 시간동안 온갖 생각이 떠다녔다.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말 하는 수밖에 없었다. 폰 화면을 보여주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제가 안 됨을 강하게 호소했다. 혹시 근처에 ATM이 없냐고도 물어봤는데 없단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내 연락처와 주소, 다시 방문할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적어둔 종이를 건넸다. 꼭 이 날 다시 방문해서 밥값을 지불하겠다고. 직원이 나의 무엇을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히도 내 제안(?)을 받아주었다. 나는 정말 고맙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혹시 내 구세주 ATM이 없을까 검색해서 나오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가보니 다 없어졌거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식당 바로 건너편 잡화점의 입구 바로 옆 ATM이 보였다. 바로 달려가 현금을 인출했고 바로 식사 값을 지불했다. 배보다 배꼽이 컸지만 그렇게라도 그 날 바로 해결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혼자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대부분의 유학생이 겪지 못할 일들을 겪었고 그 중 하나가 이 경험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직원은 나의 무엇을 믿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은 소송과 고소의 나라이기도 하고 돈과 관련된 일은 매우 냉정하다고 알았다. 그런데 이 분은 나를 대할 때 미국인이나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었고 나도 같은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이렇게 나를 도와주고 따뜻한 마음과 말 한 마디, 밝은 인사 한 번들이 모여 내 마음을 데운다. 그리고 잊고 살다가도 그때마다 되뇌인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자고.
정말 경찰서까지 갔으면 죽을 때까지 써먹을 에피소드 하나가 생겼을텐데 아쉽다.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