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이 되면 나는 다짐을 한다. 올해야말로, 올해는 정말로, 이번에는 꼭. 그렇게 말하며 노트에 적는다. 운동하기, 책 읽기, 저축하기 등등. 그럴듯한 목표들.
하지만 12월이 되면 그 노트는 어딘가에 묻혀 있다. 목표는 흐릿하게 기억날 뿐이다. "아, 올해도 못 지켰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또다시 내년을 기다린다. 2026년에는 다를 거라고, 막연히 믿으며.
올해 초, 나는 세 가지를 다짐했다. 주 3회 운동, 한 달에 책 두 권 읽기, 매달 50만 원씩 저축.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해 보였다. 1월에는 실제로 잘했다. 헬스장도 열심히 다니고, 책도 읽고, 돈도 모았다.
2월도 괜찮았다. 3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회식이 있었고, 야근이 있었고, 핑계가 생겼다. "오늘 하루쯤이야."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지금 12월 말. 운동은 작심삼일로 끝났고, 책은 다섯 권 읽었고, 저축은 몇 달 빼먹었다.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만, 성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중간한 결과.
왜일까? 왜 매년 같은 실패를 반복할까?
내 직장 동료 L은 작년에 금연을 다짐했다. 십오 년을 피운 담배를 끊겠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작년에도 금연 다짐하지 않았어?"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매년 같은 다짐을 해."
그래도 그는 올해도 금연을 다짐할 거라고 했다. "왜? 안 될 거면서." 내가 묻자 그가 말했다. "그래도 다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다짐조차 안 하면, 그게 더 무서워."
그 말이 묘하게 와닿았다.
우리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다짐한다.
왜냐하면 다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포기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솔직해지자.
2026년에도 나는 아마 이 다짐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운동은 또 작심삼일로 끝날 것이고, 책은 몇 권 읽다 말 것이고, 저축은 또 흐지부지될 것이다. 나는 나를 안다. 나의 의지력을, 나의 게으름을, 나의 한계를.
그렇다면 다짐은 무의미한 것일까?
매년 반복되는 이 자기기만은 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다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짐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이정표.
나는 운동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다짐 덕분에 일 년에 열 번이라도 헬스장에 갔다. 다짐이 없었다면, 한 번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목표만큼 읽지는 못했지만, 다섯 권은 읽었다.
다짐이 없었다면, 한 권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다짐도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것은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전히 더 나아지고 싶어 한다는 신호다.
문제는 우리가 다짐을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면 실패. 그래서 조금만 흔들려도 "어차피 망했어" 하며 완전히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이분법적이지 않다.
70%만 지킨 다짐도 가치가 있다. 50%도, 심지어 30%도 가치가 있다. 0%보다는 낫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내년에도 나는 다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다짐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밀어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작년에 실패했어도, 올해 다시 시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의지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것.
2026년 1월 1일, 나는 또 노트를 펼칠 것이다. 운동하기, 책 읽기, 저축하기. 같은 목표들을 쓸 것이다.
그리고 아마 또 지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