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그 사람에 대하여

by 생각의정원

서랍을 정리하다가 사진을 발견했다.


우연이었다. 찾던 것도 아니었다. 오래된 영수증들과 이미 만료된 카드들, 쓰지 않는 이어폰과 의미를 잃어버린 메모들 사이에서, 그 사진이 나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진을 집어 들었다.


처음엔 낯선 사람 같았다.


사진 속의 남자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작은 것. 그리고 그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는, 어색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자세로 팔을 뻣뻣하게 구부리고 있었다. 아이를 떨어뜨릴까봐 무서운 것인지, 너무 꽉 쥘까봐 조심하는 것인지.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 남자가 나였다.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저 사람과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시간이 사람을 그렇게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우리는 매 순간 다른 사람인 것인지. 사진 한 장이 그런 질문을 들고 왔다.


사진 속의 나는 젊었다.


지금도 딱히 늙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남자는, 젊음이 얼굴에 아직 어색하게 남아 있는 나이였다. 자신감과 불안이 같은 얼굴 위에 공존하는. 어른인 척하지만 어른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그 얼굴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저 남자는 그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잘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었을까. 어쩌면 그냥, 이 아이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날의 감정이.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제대로 느끼기 전에 지나가 버린 날이었던 것 같다. 인생의 가장 큰 순간들이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건, 좀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아이의 손이 보였다. 작았다. 지금 그 아이의 손은 선을 피해 걸을 때 흔들리고, 블록을 쌓을 때 집중하고, 유치원 친구의 지우개를 그냥 줘도 된다고 결정할 때 가만히 무릎 위에 올려져 있다. 그 손이 저렇게 작았던 때가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 보니 달랐다.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이해하는 것과 실감하는 것도 다르다. 사진이 가끔 글보다 정직한 이유가 그것인 것 같다. 사진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에 있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알아서 느끼게 한다.


나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라, 생각이 오기 전에 다른 무언가가 먼저 왔다. 언어가 되기 전의 어떤 것. 그걸 감정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무거웠다. 가슴 쪽이 조금.


저 남자는 그때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커서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운다는 것을. 잠들기 전에 꼭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한다는 것을. 스크램블에그를 세 번이나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을. 보도블록 선을 피해 걷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지킨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뻣뻣하게 안고 있었을 것이다. 미래를 모르는 사람의 자세로. 두렵고 조심스럽고 그러면서 어딘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지금의 나는 그것들을 안다. 그 앎이 저 남자를 만들었다. 알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뻣뻣하게 버텼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사진을 보고 나서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사진을 서랍에 다시 넣지 않았다.


책상 위에 올려뒀다. 딱히 보이는 곳에 두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서랍에 다시 집어넣는 게 이상하게 느껴져서. 마치 그 남자를 다시 오래된 영수증들 사이에 묻어두는 것 같아서.


저 남자는 나다. 지금보다 무엇이든 덜 알고 있었고, 지금보다 많은 것이 무서웠고, 그러면서도 아이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냐고, 나는 저 남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잘 하고 있다고.


몰라도 괜찮다고.


그 아이가 지금 참 잘 크고 있다고.


밤이 깊어졌다.


아이는 자고 있고, 아내는 자고 있고, 나는 혼자 사진 한 장을 책상 위에 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시작된 밤이 이렇게 됐다. 인생의 많은 밤들이 그런 식으로 된다. 별 것 아닌 시작에서, 꽤 오래 남는 것들이 나온다.


사진 속의 그 남자는 지금도 아이를 안고 있다.


뻣뻣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는 그 얼굴이 오늘 밤 좋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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