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에서, 우리 셋

by 생각의정원

오후 네 시의 서울대공원은 한숨 고르는 중이었다.


오전부터 붐볐을 사람들이 슬슬 빠져나가고, 길 위에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간. 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냥 우리 시간이 조금 늦었을 뿐이다.


벚꽃은 그대로였다. 사람이 많든 적든 꽃은 그냥 피어 있다. 그게 꽃의 좋은 점이다.


아이가 자동차를 밀며 앞서 걸었다.


집에서도 타는 것인데, 밖에서 꺼내주면 늘 처음 보는 것처럼 좋아한다. 장소가 바뀌면 같은 것도 새로워지는 모양이다. 어른도 그렇고, 아이는 더욱.


길에 꽃잎이 얇게 쌓여 있었다. 아이는 걸으면서 자꾸 아래를 내려다봤다. 멈춰 서서 꽃잎 하나를 집어 들고, 냄새를 맡고, 나를 올려다봤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거 봐, 라는 뜻이었다는 건 알았다. 봤다고 했다. 아이는 꽃잎을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가르친 적 없는 조심스러움이었다.


어른은 지나치는 것들을 아이는 멈춰서 본다.


오후의 빛은 각도가 낮아서, 흰 꽃잎들을 조금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그 빛 안에 서 있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느려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갔고, 꽃잎들이 흩어졌다. 아이가 손을 뻗었다. 잡히지 않았다. 다시 뻗었다. 세 번째에 작은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가 나를 봤다. 잡았어, 라는 얼굴이었다.


잡았네, 라고 했다.


아내와 나란히 걸었다.


말이 많지 않아도 되는 산책이었다. 아이가 멈추면 같이 멈추고, 아이가 걸으면 같이 걷고. 목적지가 없는 걸음은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게 없으니, 지금 있는 곳이 항상 맞는 곳이 된다.


한 바퀴를 돌고 나왔을 때 해가 조금 더 기울어 있었다. 아이 자동차 속도로 걸으면 그렇게 된다. 빠르게 가지 않아서 더 많이 본 것 같기도 했다.


트렁크에 자동차를 실었다. 아이는 차 문이 닫히기도 전에 졸기 시작했다.


한적했다. 조용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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