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벚꽃의 절정은 내일이라고 했는데, 오늘 이미 지기 시작했다.
예보보다 하루 빠르다. 계절은 늘 그렇다
우리가 준비를 마치기 전에 와서, 우리가 충분히 보기 전에 간다. 나는 그것이 계절의 무례함이라고 생각했다가, 어쩌면 그게 계절의 솔직함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고쳤다. 기다리지 않는 것들은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4월 3일에 피기 시작해서 열흘도 안 되어 진다. 나는 그 짧음이 늘 조금 불공평하다고 느끼지만, 벚꽃은 내 의견 따위 듣지 않는다.
이별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끝나고 나서야 그게 절정이었다는 걸 안다.
여의도에서 석촌호수까지, 서울 곳곳에서 사람들이 꽃 아래 모여들었다. 다들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을 들고, 팔을 뻗고, 꽃을 배경으로 웃었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면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무도 그냥 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남기려 했다. 벚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벚꽃을 봤다는 증거를 만드는 것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붙잡고 싶은 것인지,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 것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그 둘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이 생각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꽃이 졌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사람과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이 벚꽃 아래였다는 것도 아니고, 헤어진 날이 4월이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봄이 오면, 무언가 끝난 것들이 꽃잎처럼 떠오른다. 애도할 새도 없이 왔다가 가버린 것들이.
벚꽃은 지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쉽게 이별을 낭만화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오늘,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걸으면서 나는 잠깐 그 말을 이해했다. 지는 것은 슬프지만, 지는 것만이 줄 수 있는 공기가 있다.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그 특유의 4월 냄새.
절정이 지났다. 나는 오늘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 같다. 모레쯤, 꽃이 반쯤 진 뒤에 혼자 걸을 것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이어폰 없이. 그게 내 방식의 작별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