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면 소리가 먼저 반긴다.
현관문을 열기 전부터 안쪽이 느껴진다. 텔레비전 소리인지 아이 목소리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 웅성거림.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가방을 내려놓고, 재킷을 벗는다.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가끔 그 '그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생각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 모두가 제자리에 있는 저녁.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나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더 알게 된다.
아이는 나를 보면 달려온다. 이유가 없다. 그냥 달려온다. 나는 그 무조건적인 속도가 좋다. 세상에 조건 없이 달려오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이는 법을 배운다. 좋아하는 것에도, 보고 싶은 것에도. 그런데 아이는 그냥 온다. 이유를 모르거나, 아니면 이유가 너무 커서 설명이 필요 없거나. 나는 후자라고 믿고 싶다.
아내는 주로 아이 옆에 있다. 아이가 블록을 쌓으면 옆에서 같이 보고, 아이가 밥을 먹으면 옆에서 먹인다.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다가도, 아이가 부르면 불을 줄이고 간다. 나는 그 반복을 옆에서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저게 사랑의 가장 정직한 모양이구나. 대단한 말도 없고, 특별한 장면도 아닌데
그냥 계속 거기 있는 것. 부르면 가는 것.
어느 날 저녁, 아내가 등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수도꼭지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창밖 바람 소리. 나는 그 장면을 한동안 방해하지 않고 바라봤다.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이 결혼의 본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뜨겁지 않아도 꺼지지 않는 불 같은 것.
가족이라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이나 공기처럼. 없으면 안 되는데,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실감한다. 목이 마를 때, 혹은 숨이 차오를 때. 나는 요즘 그 실감을 미리 하려고 노력한다. 부족해지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말이 없어진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뭉클하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행복하다고 하기엔 너무 무겁다. 그냥 오래 보게 된다. 이 얼굴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옆에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붙잡고 있으면, 낮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작아진다. 회의도, 마감도, 답장 못 한 메시지도.
가족은 철학이 아니다. 냄새고, 소리고, 온도다. 매일 아침 같은 식탁에 앉는 것이고, 밤에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이다. 거창한 의미 같은 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거창하지 않음' 안에, 내가 아는 가장 단단한 것들이 다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