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신발이 낡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신발장은 매일 열고 닫는데, 나는 그 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내 신발을 꺼내다가 우연히 옆칸을 봤다. 아내가 자주 신는 흰 운동화. 뒤꿈치가 눌려 있었고, 밑창 한쪽이 조금 닳아 있었다. 오래됐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나는 그 신발을 한동안 바라봤다. 출근 시간이었는데도.
아내는 자기 것을 잘 사지 않는다.
아이 신발은 발이 클 때마다 새로 맞추고, 나한테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 운동화는 그 상태로 신고 다닌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한다. 나는 그 '괜찮다'는 말이 가끔 마음에 걸린다.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무심할 때, 그 무심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나는 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며칠 뒤, 아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사이트를 조용히 찾아봤다. 사이즈를 기억해두었다. 아내 발 사이즈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게, 그 순간 이상하게 뭉클했다.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는 것의 증거 같아서.
신발은 방향을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를 향해 걸었는지,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얼마나 많이 뛰었는지. 닳은 자리가 그 사람의 무게 중심을 보여준다. 아내의 운동화 밑창이 바깥쪽으로 조금 더 닳아 있었다. 아이를 안고 다닐 때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탓이라고, 나는 혼자 짐작했다. 맞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닳은 자리가 지난 몇 년의 시간처럼 느껴져서, 나는 한참 동안 신발장 문을 닫지 못했다.
낡은 신발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새 신발을 사면서도 낡은 것을 신발장 한쪽에 밀어두는 습관. 버리기 아까운 게 아니라, 버릴 이유를 아직 못 찾은 것이다. 함께 걸어온 시간을 쉽게 내놓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신발장을 닫으면서 생각했다. 다음 주말엔 같이 나가서 신발을 하나 고르자고 해야겠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낡았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오래 걸어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