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들의 이야기

by 생각의정원

어제 지하철에서 한 젊은 직장인을 보았다.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 검은 가방을 든 그는 마치 도시의 풍경 속에 완벽하게 녹아든 그림자 같았다. 그가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늘 회의 자료 준비했나요?"라는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을까.


미생(未生). 아직 살지 못한 자들. 바둑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한 돌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이 단어는 회사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신입사원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들은 매일 아침 7시 30분 알람과 함께 깨어나 어제와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버티고,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퇴근 후에는 혼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나는 종종 그들을 관찰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복사기 앞에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목적지는 분명히 있는데, 그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회사라는 곳은 참으로 이상한 공간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 모여 있으면서도 각자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미생들은 그 고립감을 가장 예리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회의실에서 침묵하고, 회식자리에서 어색하게 웃고, 프로젝트에서는 가장 하찮은 일을 맡는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그들은 조금씩 무언가를 배워간다. 생존의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타협의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미생은 점심시간마다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본다. 어떤 미생은 퇴근 후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또 어떤 미생은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를 켜놓고 맥주 한 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에게도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선배가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순간, 자신이 작성한 기획서가 채택되는 순간, 동료가 퇴근 후 맥주 한잔 하자고 제안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그들은 조금씩 바둑판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미생에서 완생(完生)으로, 아직 살지 못한 자에서 완전히 산 자로.


물론 모든 미생이 완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 어떤 이들은 영원히 미생으로 남아있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니까.


지하철에서 만난 그 젊은 직장인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마도 여전히 검은 정장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거대한 바둑판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는 더 이상 미생이 아닐 것이다.


미생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오늘도, 내일도, 그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완생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는 영원한 미생이 아닐까. 완전히 완성되는 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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