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1시,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원했는지 세어보려 했지만, 곧 포기했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마신 커피보다 더 맛있는 커피, 입고 간 셔츠보다 더 멋진 셔츠, 타고 다니는 지하철보다 더 편안한 자동차. 그리고 현재의 나보다 더 나은 나.
욕심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감정이다. 그것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인 동시에,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독이기도 하다. 마치 목이 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고, 더 마르면 더 마시고 싶어진다.
지난주 서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책 한 권을 사러 갔는데, 결국 다섯 권을 사서 나왔다. 처음에는 정말 필요한 책 한 권만 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책 옆에 있던 다른 책이 눈에 들어왔고, 그 책을 집어든 순간 또 다른 책이 보였다.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욕심이 다른 욕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에 돌아와서 새로 산 책들을 책장에 꽂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 책장에는 이미 읽지 않은 책이 스무 권 넘게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또 다른 책들을 원했고, 실제로 샀다. 이것이 바로 욕심의 본질이다.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
사람들은 흔히 욕심을 나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욕심 없이는 인간이 지금까지 이룬 것들 중 대부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멀리 가고 싶다는 욕심이 자동차를 만들었고, 더 빠르게 소통하고 싶다는 욕심이 인터넷을 만들었다.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의학을 발전시켰고,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예술을 탄생시켰다.
문제는 욕심 자체가 아니라, 욕심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욕심이 주인이 되고 우리가 종이 되는 순간, 우리는 불행해진다.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 카페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커피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각도, 완벽한 조명, 완벽한 구도를 위해. 그리고 마침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이미 차가워진 커피를 마셨다. 그녀가 원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완벽한 커피 사진'이었다. 욕심이 현실을 삼켜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욕심이 우리를 구원하기도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사랑하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 이런 욕심들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깊이 있는 인간으로 만든다.
나는 욕심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모든 욕심을 억누르려 하지도 않고, 모든 욕심에 굴복하지도 않는 법을. 마치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면 반발하고, 너무 방치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관심을 주면서, 함께 산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요즘 나는 욕심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내가 주도권을 갖고 싶어." 그리고 욕심은 대답한다. "알겠어, 하지만 가끔은 내 말도 들어줘. 나도 너를 위한 마음에서 하는 거야."
저녁 12시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제는 평온하다. 내일 아침에 마실 커피, 입을 셔츠, 타고 갈 지하철.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동시에, 더 나은 것들을 원하는 마음도 여전히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운 모순이다. 만족하면서도 불만족하고, 감사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리고 이 모순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욕심과 함께, 욕심 때문에, 욕심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