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시간, 회사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싸주셨던 도시락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 기억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치 오래된 서랍을 열었을 때 나오는 희미한 향기처럼.
초등학교 시절, 나는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다. 하얀 플라스틱 도시락통 안에는 항상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있었다. 김 한 장으로 밥을 동그랗게 감싼 주먹밥, 계란말이 한 조각, 시금치 나물, 그리고 빨간 소시지 몇 개.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도시락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고, 도시락통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담으시는 어머니의 손길을.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친구들과 도시락을 까먹을 때면, 나는 가끔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을 부러워했다. 누구는 유부초밥을 싸와서 자랑했고, 누구는 돈가스가 들어있어서 인기가 많았다. 내 도시락은 그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때로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왜 우리는 맛있는 거 안 싸줘?"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김치볶음밥을 해주시거나, 작은 사과 한 조각을 더 넣어주시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나만큼 속상하셨을 것이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급식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도시락을 싸올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그것이 너무 기뻤다. 친구들과 똑같은 급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어머니는 아쉬워하셨다. "이제 도시락 안 싸도 되니까 섭섭하네."
그때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는 일이 없어져서 좋으실 줄 알았는데, 왜 섭섭해하시는지 모르겠었다. 이제야 안다. 도시락을 싸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나를 돌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을.
2023년에 나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올해 첫 아이가 태어났다. 요즘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새삼 깨닫는다. 도시락을 싸서 출근할 시간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샤워하고, 옷을 입고, 아이 기저귀를 갈고, 아내와 오늘 할 일을 정리하다 보면 벌써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던 걸까.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까지 싸서 나를 학교에 보낸 후에 본인도 출근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셨다. 아니, 그냥 대단한 게 아니라 기적에 가까웠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아이 밥을 준비했다. 우리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매번 밥 먹이는 것이 전쟁이다. 이것도 뱉고, 저것도 뱉고. 평소에 혼자 이 일을 감당하는 아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나는 또다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제 나도 누군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장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매달 나가는 생활비, 아이 용품비, 보험료들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셨을까. 그 평범한 도시락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사랑이었을까.
요즘 나는 종종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안부를 묻고, 건강은 어떠신지 확인한다. 그리고 가끔씩 말씀드린다. "어머니, 어릴 때 싸주신 도시락 정말 맛있었어요."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하신다.
"그때는 별것도 아니었는데 뭘."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별것'이었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소중한 '별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별것'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을.
언젠가 내 아이도 자랄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돌봐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내 아이도 나를 떠올릴까.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식탁을, 사랑으로 준비한 작은 도시락을.
도시락은 단순히 점심을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쓴 시간, 그 시간 속에 스며든 마음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머니의 도시락을 그리워한다. 맛이 아니라 마음을, 음식이 아니라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