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선 건 밤 아홉시였다. 수요일이었고, 사무실에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3월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다가 회사 앞 편의점에 들렀다. 저녁을 먹지 못했다. 아니, 먹을 수 있었지만 먹지 않았다. 오후 여섯시쯤 팀장이 "먼저 먹고 와"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는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쉬웠다.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갔다. 형광등 불빛이 밝았다. 삼각김밥 코너 앞에 섰다. 참치, 김치, 불고기, 스팸. 늘 먹던 것들이었다. 나는 참치 하나와 바나나 우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았다. 삼각김밥 포장을 뜯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은 없었다. 아니, 맛이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삼켰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팀에 배치되고,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로웠다. 회사 건물, 사무실 배치, 동료들의 이름.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긴장됐고, 점심시간이 되면 어디서 먹어야 할지 몰라 헤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게 익숙해졌다. 너무 익숙해졌다. 아침 여덟시 반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서를 쓰고, 팀장의 검토를 받는 것. 점심은 회사 식당에서, 저녁은 편의점에서.
"이게 어른의 삶이구나." 어느 날 생각했다.
그날 아침, 대학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저녁 먹자고. 나는 "요즘 바쁘다"고 답장했다. 실제로 바빴다. 아니, 바쁘다고 느꼈다. 아니, 바쁜 척하는 게 편했다.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내 삶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잘 지내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잘 지내고 있는가. 모르겠다. 회사는 나쁘지 않다. 동료들은 친절하고, 월급은 제때 나오고, 업무는 감당할 만하다. 아프지 않고, 큰 문제도 없고,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한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침에 눈을 뜰 때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게.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을까" 궁금해진 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 게.
대학생 때는 달랐다. 미래는 가능성으로 가득했고,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고, 무언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흘러간다. 월요일이 오고, 금요일이 가고, 다시 월요일이 온다.
"괜찮아질 거야."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괜찮아진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게 원래 어른의 삶인 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 선택한 건지.
옆 테이블에 누군가 앉았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삼십대 중반쯤의 남자였다. 그도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버렸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 피곤해 보였다. 전광판에 전철 도착 시간이 표시됐다. 2분.
전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렸고, 사람들이 탔다. 나도 탔다. 손잡이를 잡고 섰다. 전철이 출발했다.
창밖으로 어둠이 흘러갔다. 가끔 불빛이 보였다. 아파트, 건물, 간판.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사무실, 누군가의 가게. 각자의 삶이 그곳에 있었다.
집에 도착한 건 열시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을 켰다. 작은 원룸이었다. 침대, 책상, 옷장. 창문 밖으로 다른 건물의 불빛이 보였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모레도, 그 다음날도. 언제까지? 모르겠다. 그냥 계속.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SNS를 열었다. 대학 동기들의 게시물이 보였다. 누군가는 해외여행 사진을 올렸고, 누군가는 자기계발서 추천을 했고, 누군가는 결혼 소식을 전했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실제로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내일 할 일들이 떠올랐다. 아침 회의, 보고서 마감, 팀장 면담.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지금은 이렇지만,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그냥 그런 희망 같은 것.
아니면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고, 집에 돌아가 잠들고, 다음날 아침 알람이 울리면 다시 일어나는 삶.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 괜찮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아니, 선택했다기보다는, 이렇게 흘러온 삶이니까.
잠이 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일 저녁에는 다른 걸 먹어봐야겠다. 삼각김밥 말고. 뭐라도. 작은 변화라도.
그리고 잠들었다. 깊지 않은 잠. 꿈도 꾸지 않는 잠. 그냥 시간이 지나가는 잠.
아침이 되면 알람이 울릴 것이다. 나는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