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던 시절. 그 많고 많은 후보 중에 상위권에는 늘 건축이 있었다. 건축가도 아닌 건설업도 아닌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아닌 말 그대로 '건축'의 느낌이었다. 광범위하게 포부를 내지르자면 '도시계획'에 더 근접했을지 모른다. 달랑 건물 하나 짓는 게 아닌,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도시를 기획하고 계획하고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에 대한 모호한 욕망이 늘 내겐 꿈틀거렸다.
그런 연유로 건축을 주제로 하는 책 역시 음악이나 영화만큼 자주 대출을 했다. 그저 읽고 마는 수준이지만 종종 책에 따라 커다란 울림을 선사하는 책도 있었고, 그저 그런 책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설계부터 시공 그리고 법적인 이해관계까지 모두 해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주 작은 도시를 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곤 한다. 더욱이 지금처럼 최첨단 설비가 중무장한 시대가 아닌 과거의 건축물은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들만을 놓고 볼 때 경이롭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너무나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 '서아시아에서 중국 대륙까지 문명의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 건축물 여행'이라는 소제목을 간과한 것이다. 전 세계 건축물이 아기자기하게 등장하겠거니 하고 시작했으나 서아시아와 중국 인도의 건축물만 소개된 것이다. 문명의 근원지가 기준이라 무리도 아니다.
하물며 선명한 사진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저작권 때문에 그럴 거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일러스트 삽화는 어찌 보면 이해를 돕다가도 또 한편으론 도무지 허무맹랑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건축 분야에선 비교도 안될 만큼 전문가 여섯 명이 쓴 책이니 굳이 내가 트집 잡을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소제목에 따라 책은 서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중국까지 총 3개의 커다란 챕터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3~4페이지를 한 꼭지로 삼아 굉장히 함축적인 소개와 함께 적잖은 일러스트가 이해를 돕는다. 소개 글이 너무나도 짧아서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 없다면 글이 아닌 활자로만 다가오는 페이지가 있어 아쉬웠다. 이래서 평소에 공부를 해놔야 어느 책을 펼쳐도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X잡고 반성 많이 했다.
관련하여 서아시아와 인도, 중국의 건축물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건축물에 그 흔적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눈여겨볼 요소다. 그리고 건축물을 중심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 풍경과 특징적인 생활 도구들도 자세하게 설명된다. 당연한 연결 고리겠지만 시대별 종교와 사회제도 또한 건축물과 함께 소개되어 단순히 건축만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보기엔 담겨 있는 콘텐츠가 제법 풍성하다.
깊이감이 있는 듯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해당 꼭지가 끝나버리는 아쉬움은 본 책을 중심으로 파생될 다양한 주제의 건축 관련 책을 더 찾아 읽어야 해소될 것만 같다. 한 권 읽고 나면, 이렇게 숙제가 만들어지는 책들이 있다. 고마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