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오래된 지인을 만나 밥을 먹었다. 엄마 같은 누나인 그녀는 5학년 6학년 두 아들을 두었고, 장차 두 아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제법 무게감 있는 고민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평생 한 가지 직업만을 갖고 살진 않게 될 거라고. 무엇보다 시대가 그렇다고. 그러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따위에 걱정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다.
내겐 두 형이 있다. 스무 살 이후 30여 년 평생을 자동차 정비와 굴삭기 기사로 직업을 삼는 두 형은 내게 늘 존경의 대상이다. 나라면 길어야 3~4년이었을 텐데... 그나마 지금 다니는 직장도 처자식이 있고 다닐만하니 8년째 다니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가장 긴 근속연수가 4년이 최대였다.
음악과 영화가 좋아 관련 분야에서 20대를 온전히 즐겼다. 저축은 고사했고 아내에게 청혼할 때 통장엔 430만 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후회는 안 한다. 경험할 수 있는 그때 내가 택한 모든 것들은 적절했고 또 탁월했다. 만약 지금 나이에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일들. 물론 이마저도 한곳에 진득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오만 곳에 기웃거리며 10년을 보낸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기합리화겠지만 말이다.
흔히 평생을 한 직업에 몸담은 이에겐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말한다. 그 자체로 물론 정말 훌륭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일만 하며 인생을 저당 잡히는 건 가끔 억울하게 보일 때가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 다양한 상황과 늘 예측하지 못하는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버텨낸 그 '맛'을 나는 종종 흠모해왔다.
그 생각은 더 넓게 가지를 확장하여 두 아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해도 견딜 수 있는 지구력, 빠른 상황 판단을 통해 아니다 싶을 땐 과감하게 포기하고 탈출하는 결단력,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종종 똥을 밟고 넘어졌을 땐 빨리 똥을 닦아내고 일어날 수 있는 신속한 상황 대처능력에 대해 말이다.
길고 긴 과정에서 정착의 시점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젊음을 낭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그 어떤 이득을 보지 못할 일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다면 최대한 존중할 마음의 다짐을 부모로서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마라톤을 뛸 필욘 없다. 선수가 아닌 심판을 해도 될 일이고, 심판도 아닌 관객이 되어도 좋을 일이다. 또한 종목이 마라톤이 아니어도 된다. 개개인의 개성과 아이의 성향이 깊게 뿌리내리고 넓게 확장해 나갈 그 순간의 결정을 함께 공감해 나가야겠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값진 노동을 이어나가는 모든 이들의 땀방울에 찬사를 보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음을 무엇보다 가장 먼저 두 아이에게 일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