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ㅣ 정희원, 전현우 ㅣ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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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운전이란 걸 해본 적 없다. 어쩌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볼까 싶어 큰형의 낡은 자동차로 경기도 외곽 어느 공터에서 두세 차례 운전 흉내를 내본 것 외엔 단 한 번도 없다. 한쪽 눈이 실명인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게으름과 더불어 굳이 운전하지 않아도 아쉽거나 부족할 것 없는 도시 한복판에서 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결혼과 함께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끔 '마이카'에 대한 허전함이 깃들 땐 분명 있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계획한다면 차가 없어도 충분히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 덕분에 조금 더 걷게 되었고, 조금 더 땀을 흘리게 되어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것 같다.
다소 거창하다. 혹은 광범위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왜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지 짐작으로 그쳤던 내 질문에 대답이 꼭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기대를 과감하게 빗겨나간다.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다. 또한 서울과 더불어 인천과 경기에 전 국민 반이 사는 구조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출퇴근을 하고 이동을 한다. 먹고살기 위해 분주하게 발길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통대란, 교통시설, 도시 인프라, 그리고 갖가지 문제점들과 현상들을 나노급 핀셋으로 정확하게 집어낸다.
몹시 딱딱하고 거칠었을 소재를 두 저자가 주거니 받거니 편지글을 쓰며 풀어 헤친다. 의사와 교통연구가의 서사는 물과 기름 혹은 화성과 금성을 보는 느낌이다. 조금 말랑거리면 금방 단단해지고, 조금 뻣뻣하면 금방 부드러워진다. 거기에 두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과 일상 속에 녹아든 주의 깊은 관찰력들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그 결을 나란히 해서 더욱 실감 난다. 우리의 출퇴근길에 숨어 있는 다양한 통계와 확률 그리고 인프라와 시스템에 어떤 이면이 숨겨져 있는지 과연 당신은 아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의 사람들이 출퇴근길에 왜 그렇게 무표정하고 좀비처럼 행동하는지 우리는 아는가!
평생을 대중교통에 몸을 담아 살아온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였기에 책을 넘기는 순간순간의 감회가 매번 새로웠다. 특히 어쩔 수 없는 서울 공화국이란 공간에 모든 프로세스가 집중된 현실에서 과연 이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즐겨 하던 내 고민과 닮아있는 모습도 있어 놀라웠다.
단순히 수도를 옮겨서만 해소될 수 없는 영역. 어쩌면 도시와 국가의 모든 기반 설비를 재설계해야 하는 그야말로 막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더더욱 불가능한 작전은 결국 이 책 한 권에 허탈한 소회와 아찔한 박탈감으로 나열된다.
서울과 경기를 이어주는 광역버스, 택시, 지하철, 그리고 철도, 나아가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이용되는 지하철 무임승차, 고속도로 이용료와 혼잡통행료, 탄소 배출, 비행기, 그리고 걷기까지... 어쩌면 이동이란 숙명을 평생 지닌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현실을 분야별로 요소별로 들려준다. 물론 직전에 언급한 '이동이란 숙명'에 대해서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된다. 그래서 내가 예전부터 가장 갖고 싶었던 초능력이 '순간 이동'이었는지 모른다. 비행기도 탈 필요 없고, 뱃멀미도 할 필요 없으니 말이다.
읽어가면서 이 부분은 꼭 독서일기 쓸 때 언급해야지 다짐했건만, 9개의 챕터가 결국 모두 해당되었다. 직업을 막론하고 생활을 위해 활동하는 모든이라면, 남녀 수를 가리지 않고 눈여겨볼 만한 주제다. 그것은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주거니 받거니 두 저자의 입담에 책 넘김은 마치 미풍을 타고 언덕길을 타고 오르는 선선한 바람에 머리카락을 샤워하는 듯한 청량감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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