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는 성수기에 어딘가를 간다는 것 자체가 소모적이라 생각한다. 값도 비싸고 대접도 못 받고 무엇보다 붐비는 상황이 너무 질색 맞다. 다행히 아내도 나와 뜻을 같이 한다. 하지만, 유독 짧은 여름방학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극성수기 워터파크를 다녀왔다. 발권부터 지옥의 시작이었으나 고맙게도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한창 신나게 놀다가 둘째가 화장실 가고 싶다 해서 함께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집어넣고 잠깐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 겨우 서너 살 된 남자아이 하나가 엄마랑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가 데리고 들어가서 뉘여도 될까요?' 먼저 건넨 말에 아이 엄마는 고맙단 말을 연신 전했다. 얼마나 참았는지 웬만한 어른만큼 오줌을 싼 아이는 그제야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 전했다. 옆구리를 들어 올려 세면대에서 손도 닦게 했다. 엄마에게 건네자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아내 왈 근력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 헬스를 등록했다. 탈의실로 들어가는데 삐쩍 마른 아저씨가 내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옷을 벗던 도중 캐비닛이 자동으로 잠겼다는 것이다. 로비로 나가기엔 애매한 옷차림이었다. '여기 221번 캐비닛이 자동으로 닫혔어요. 열어주세요!'라고 로비에 가서 큰 소리로 전했다. 작은 눈이 하회탈처럼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집 근처라 가장 자주 이용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풍경은 다른 역과는 조금 다르다. 2, 4, 5호선 무려 3개의 노선이 맞물리는 환승역인 동시에, 인근에 저렴한 호텔과 숙소가 많아 늘 외국인으로 붐빈다. 출근길에 마주하는 외국인들은 4호선을 타고 서울역을 거쳐 공항으로 향하는 패턴이 대부분이고, 퇴근길에 마주하는 외국인들은 서울 시내 구경을 위해 이동을 하는 분위기다.
환승하는 방향을 몰라서 주변을 둘러보거나 출구 방향을 몰라 머뭇거리는 사람, 먼 길을 가는지 손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이동하는 어르신, 손에 쥔 안내 지도와 역사 내 지도와 달라서 멈 짓 하는 외국인들까지... 눈에 보이면 먼저 다가간다.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만 위기의 순간에서 탈출시켜줄 수준은 된다. 우스운 건 내 얼굴이 길 물어보기 딱 좋게 만만하게 생겼나 보다. 가만히 있어도 먼저 다가와 길을 묻는다. 어려운 일이겠는가. 방향이 같으면 날 따라오라고도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까지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시간에라도 '도와드려요!'라는 형광띠를 하나 두르면 좋겠다.
지난 토요일엔 하루 온종일 비가 요란스럽게 내렸다. 폭우가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맑게 개었고, 또 언제 맑았냐는 둥 다시 비가 내렸다. 지자체에서 준비한 댄스 수업을 듣고 집으로 오던 길 갑자기 내린 폭우에 둘째 녀석이 집 앞 이발소에 발이 묶였다. 무척 세련된 인테리어라 커트 비용도 비싸서 평소에 단 한 번도 이용 못했던 곳인데, 젊은 사장님은 아이에게 간식도 주시고 내게 전화까지 연결해 주셨다. 엄두가 나지 않는 비용이라 앞으로도 커트는 어렵겠지만, 직접 구운 쿠키 한 상자 가져다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