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세계 ㅣ 찰스 브라메스코 ㅣ 최윤영 ㅣ 오브제
컬러텔레비전과 비디오를 보며 자란 나로서는 흑백 시절을 떠올려볼 때 가장 궁금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때는 그럼 세상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모두 흑백의 옷을 입고 있었단 말인가? 절대 그럴 리 없는걸 알지만, 세상을 온통 흑백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그땐 답답해서 어떻게 참았을까? 물론 그땐 컬러를 몰랐으니 흑백이 익숙해서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CRT 모니터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시대다. 모두가 손에 액정을 들고 다니는 시대이자, 건물 외벽뿐만 아니라 허공에도 영상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더 이상 '컬러'라고 이름 붙이기 멋쩍을 정도로 그것들은 자연스러워졌고 도처에 만연하고 있다. 그래서 되려 CG가 난무하는 최신 영화보다 특수효과 정도만 있을 법한 오래전 흑백 영화에 더 손이 가는 건 굳이 그 이유를 찾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 있는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최근 경험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흑백 버전으로 다시 볼 때의 쾌감은 그야말로 짜릿하고 황홀했다.
미디어 평론가이자 자유기고가인 저자는 총 50편의 작품을 통해 '영화 속 컬러'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절하게도 초창기 영화 시대, 본격적인 태동기, 찬란한 황금기, 그리고 디지털로 이어지는 다음 세대에 대한 챕터까지 모두 4개의 소주제로 그것들을 묶는다. 서문 전에 한국의 독자를 위한 별도의 페이지가 있음은 사뭇 새로운 느낌이다. 50편의 작품 중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나열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
컬러, 색, 영화라는 기술적 장르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소 전문적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각 작품이 개봉 당시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위치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언급한다.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장르 전체 역사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은 제법 그 역할도 톡톡히 할 정도의 수준을 지니고 있다. 결국 영화란 것이 최대한 그럴듯하게 보이고 사실적으로 흉내 내는 장르이기에, 정교한 화면 연출과 최대한 실사에 가까운 색 연출은 결국 불가결의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왼쪽 페이지에는 작품의 정보와 함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소개가 한 페이지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해당 작품에서 '색'을 주제로 가장 적나라하게 어필될 스틸이 소개된다. 물론 해당 컷에 등장하는 고유의 색 차트와 RGB 값도 함께 말이다. 더욱이 친절한 것이 온라인 컬러 코드까지 첨부하니 디자인 툴을 조금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값진 경험을 무한대로 즐길 수 있다.
더욱이 적잖은 작품에서 이어지는 다음 페이지의 펼친 면을 통째로 스틸컷과 컬러 차트로 할애한 파격적인 구성도 마음에 든다. 영화를 소개하고 영화 속 컬러를 소개하는 책인 만큼, 이미지에 큰 부분을 신경 쓴 것은 고마울 정도다. 시대를 어우르면서 과거의 작품과 후세의 작품들이 감독 또는 제작사 등을 매개로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를 엿보는 재미도 있다. 그야말로 영화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소재들을 높은 밀도로 압축해 놓은 구성이 틀림없다.
적지 않은 예산과 오랜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지는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 촬영, 조명, 의상, 특수효과, CG, 연기 등 어느 한 분야 소홀하지 않겠지만, 영화 장르가 시각적 유희를 전해주는 매체라는 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스크린에 드러나는 컬러란 그야말로 영화가 표현하는 궁극의 지점에 놓여있음이 맞다. 따라서 책에서 등장하는 고유의 컬러들은 어우러지는 두세 가지의 다른 색과 더불어 특별한 느낌, 고유의 성질을 은연중에 피력한다.
용도에 따라 각각의 작품에 소개되는 색들을 잘 활용한다면, 그 영화의 느낌이 베어나는 전혀 새로운 예술이 태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일주일에 한 편씩, 책에서 소개하는 50편의 작품을 1년을 목표로 삼아 관람해도 좋을 것만 같다. 이렇게 숙제가 다짐이 계획이 목표가 늘어난다.
<책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