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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Oct 16. 2024

[독서일기] 샤이닝 ㅣ 스티븐 킹 ㅣ 이나경ㅣ황금가지

비디오 가게를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찾던 시절. 러닝타임이 길다는 이유로 비디오테이프 2개에 영화 한 편을 담은 일들이 종종 있었다. 비록 비디오테이프는 2개지만, 영화는 한 편이니까 한편 값에 빌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건 몹시 부당했고 또 기분 상하는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한 번에 30권까지 빌릴 수 있어 그런 마음은 안 들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이 5권에 한정되어 있었을 때, 2권으로 나뉜 책을 빌릴 때면 늘 머뭇거리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읽은 비평집의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바로 <샤이닝>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극장을 혐오하지만, 몇 년 전 롯데시네마가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을 한 것은 여전히 고마운 일로 남는다. 스크린으로 <샤이닝>과 <시계 태엽 오렌지>를 볼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자주 그러진 않지만 삶이 우울해질 때 나는 <샤이닝>을 관람한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더 우울해지면서 되려 그 기분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우울의 정도가 심각할 땐 <샤이닝>에 이어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을 연달아 본다. 그럼 감기 뚝! 우울 뚝! 그리된다. 



그날도 지인과 12시간 동안 이어진 술자리에서 스탠리 큐브릭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샤이닝>에 대해서도 낱낱이 파헤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늦은 감은 있으나 원작을 읽어야겠다 다짐했다. 소설을 잘 읽진 않지만, 그래도 이건 영화 <샤이닝>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어째 순서가 좀 바뀐 것 같지만... 무튼 그리하여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다. 


두 권의 책. 영화를 먼저 본지라 읽는 내내 영화 속 장면들이 스틸컷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출퇴근길 지하철 그리고 틈틈이 읽어 내려간 10일간, 영화 한 편을 길게 늘여 본듯한 착각까지 경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스티븐 킹이 그토록 동명의 영화를 싫어했는지를 감히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흐름을 달랑 2시간 영화에 담으려면 가지를 엄청 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 과정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자기 스타일에 확고했을 터, 스티븐 킹이 소설에서 내비친 섬세함이 제법 많은 부분 생략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흑인 요리사 할아버지 할로런의 캐릭터가 소설과 영화 속에서 그 호흡을 달리하는 것은 잠시나마 관객이 아닌 독자인 내게도 치명적이었다. 


장르 영화, 극적인 연출, 오르가슴에 가까운 절정을 이끌어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으나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하지만 어떠한가. 소설도 이토록 매력적이고! 영화도 정말 짜릿하지 않은가!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다시 한번 <샤이닝>을 관람해야겠다. 독서를 마친 기념으로, 수백 페이지에 담긴 활자들을 필름에 모두 녹아내리긴 힘들었을 테니, 작가와 감독의 고민을 맥주잔에 가득 쏟아붓고 그들의 진심과 영혼을 곁에 둔 채, 관람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또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찾아서 원작을 읽는 순간을 더 자주 만들어야겠다.


<책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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