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
아버지는 정확히 세 번, 그렇게 말씀하셨다. 수술 전날 밤에 걱정 마시라고, 수술이 끝나고 잘 마쳤다고, 그리고 엄마를 통해 적잖게 걱정하시니 전화 더 드리라 하셔서 저녁을 먹고 그렇게, 전화로 말씀하셨다.
그럴듯한 말도 없었다. 다정한 낱말도 없었다. 선천성 질환으로부터 비롯된 수술이니 책임감 또는 죄책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당신께서 머뭇거릴 때마다 그 짧은 순간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나를 찔렀다. 아프진 않았다. 어쩌면 그 바늘은 스스로 내게 찌르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여전히 수줍어했고,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런 시대였다.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아버지가 내게 어쩌면 너무나도 명확하게 건넨 저 표현이 그 어떤 말보다 다정하게 들렸다. 알고 지낸 지 곧 있으면 50년이 되는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맑은 내 목소리를 전했고, 경청해 주는 당신이 거기 있는데 무슨 표현이 더 필요할까. 할 말이 없다는 말은 번데기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어서 건강 회복해라, 나비가 되어 날갯짓한다.
병실 커튼도 그래서 화사한 노란빛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