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일기]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ㅣ 이대현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ㅣ 이대현 ㅣ 다할미디어

by 잭 슈렉

소설 읽기를 썩 좋아하지 않던 시절, 나를 잠시 잠깐 환상의 공간으로 초대해 준 작가가 하나 있었다. 별것 없을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의 책이 무척 좋아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그리 두껍지도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솔솔 부는 봄바람을 닮은 삽화도 좋았다. <좀머 씨 이야기>에 푹 빠진 나는 한참 뒤 그 작가의 다른 책 출간 소식을 접했다. 명료한 제목이었다. <향수>였다. 연쇄 살인마를 다룬 내용이었으나 다른 그 어떤 내용보다 고풍스러웠다. 특유의 분위기가 읽는 내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심장이 두근거릴 수도 있단 사실을 어쩌면 그때 처음 알았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한참 뒤 영화에 푹 빠져 살던 어느 시절, 영화로 <향수>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봉을 학수고대했고 스크린으로 만난 <향수>는 분명 책과 닮았으나 많이 달랐고, 너무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였으나 문학과 영상의 표현 기법에 따른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시켰다. 영화도 물론 좋았으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그 많은 것들이 영상으론 되려 더 표현되기 어려움을 여실히 느꼈다. 더 많은 소설을 경험했더라면 더 많은 영화에서 그 간극을 느꼈을 터! 하지만, 난 소설 읽기를 썩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익숙하면서 낯선 이다. <살인의 추억>의 후반부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전하는 단역이라면 힌트가 될까! 그는 이래 봬도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해온 정통파다. 텍스트로만 서사를 풀어가는 소설이 지닌 한계와 그 너머의 가능성, 그리고 영상예술의 궁극에 이른 영화라는 장르가 소설을 어떻게 품고 또 다루는지에 대한 극명한 비교와 해석이 펼쳐진다.


book-419589_640.jpg


따라 하기, 바꾸기, 더하기 빼기, 새로 만들기 등 총 네 종류의 파트를 나눠 원작 소설과 영화 작품이 어떤 형태로 차이를 두는지를 이야기한다. 먼저 따라 하기를 살펴보자. 굳이 죽자고 따져가며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우린 충분히 영화적 재미로 감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며 그는 <마션>을 품에 안는다. 시대와 공간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섬세한 연출과 이해가 부족해서 <허삼관(매혈기>에는 채찍을 휘두른다. 100살의 노인이란 방대한 삶의 서사를 100여 분 영화에 담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자명하다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는 위로를 전한다.


서사를 강조한 소설과는 달리 명확한 동기부여와 선명한 결말을 이끌어 낸 <레버넌트>, 소설과 영화에서 각각 주목한 부분이 선명하게 대비되며 완벽한 흥행과 성공을 이끌어 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바꾸기에서 주효하게 다뤄진다. 우리가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의 실체를 실낱 하게 꼬집어 주기도 하고, <전설의 주먹>, <이끼> 등을 통해 강우석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더하기 빼기에서 마주할 수 있다.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설국열차> 그리고 유행처럼 언제 다시 번질지 모르는 확장력을 품고 있는 <레미제라블> 등은 새로 만들기에서 만날 수 있다.


때로는 정성껏 보듬는 마음으로 다가오지만 가끔은 거칠고 투박한 어투로 꼬집고 비틀고 흠씬 두들겨 패는 저자의 스타일의 변화도 매력적인 책이다. 맘 같아선 거론되는 작품들의 원작을 모두 읽으면 좋겠지만, 소설 읽기를 싫어하니 그건 가볍게 패스하기로 하자.


영화를 사랑하는 애호가에게, 소설을 좋아하는 애독자에게. 이 책은 모두에게 흥미를 선사해 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82857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비가 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