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고 사라지는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깃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던 동네 어귀 가게가 사라진다. 기억을 송두리째 없앨 만큼 높은 빌딩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익숙해지면 그것이 결국 사실이 현실이 진실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나는 우리는 모두는 그곳에서 사라졌던 그 시절 그 추억을 회귀하기 어려워진다.
태어나 숨 쉰 시대와는 몇 뼘을 앞세워 시대를 주무르던 장르가 있다. 블루스다. 소위 '난리 블루스'라는 말로 폄하될 만큼 이 장르의 궤적은 평탄치만 않았다. 미군부대로부터 시작되었고, 연주한 아티스트의 평가 절하는 으레 당연시되었다. 솔직히 말해 국악을 제외한 그 어떤 음악 장르에서 순수 '우리의 것'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등한시되고 배척되던 장르들이 더러 있었고, 그중 블루스 역시 그 철퇴에 벗어나지 못했다.
채수영
그는 이름이 참 곱다. 생김새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은 말투는 그리고 그의 연주를 바라봐 준 관객에게만큼은 그는 정말 고왔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건넨 악수, 내게 묻던 안부, 멋쩍어하며 2집에 대한 나름의 포부를 전했던 인터뷰의 공기는 여전히 내게 현재 진행형이다. 쓰고 보니 미안해진다. 큰형님, 잘생겼다.
거대한 우주의 논리로 지켜봤을 때, 인간의 죽음은 찰나에 지나지도 않을 사건이, 맞다. 그랬던 그가 준비할 여력도 없는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났다. 망연자실했고, 슬프다 못해 그 일은 현실적으로 실감할 만큼 생생하지도 못했다. 그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던 협소했던 장례식장은 왠지 그가 평소 음악인으로서 숨 쉬던 필드의 공간만큼 안타까웠다.
취향의 다양성과 개취라 일컫는 개인의 취향의 범주는 그 누구도 선을 긋거나 획일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예술은 다양성을 늘 포함하기에 나는 그 매력을 시시때때로 한계치 이상 즐긴다. 그래서 맘에 든다. 채수영이라 쓰고 내겐 큰형님이라 읽어야만 하는 그의 족적은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수백 년 전, 질 좋은 흙으로 도자기를 빚었던 도공의 마음이 그랬을까. 전자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그의 호흡에 나란히 했던 시대의 음악 블루스를 우리는 그 덕분에 마음껏, 누렸다.
고마운 것은 피터팬 콤플렉스를 지독히 앓고 있는 내게 과거의 공기를 회귀시키는 유일한 마취제가 그의 단 한 장 뿐인 음반이라는 것이다. 미안한 것은 그다음 앨범은 그럴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완성하지 못한 팬심에 머문다. 모든 것들을 엉켜 뭉쳐 나는 채수영의 음악을 존경하게 되었고, 그 시점은 안타깝게도 그가 내 곁을 떠난 이후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속절없는 삶의 어긋난 결속력의 오차다.
언급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몹시 좋은 이슈가 있는 밤이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경사도 채수영, 큰 형님의 공이 나름 있다. 그가 내게 들려준 연주와 그가 내게 보여준 블루수와 그가 내게 전해준 덕담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진심 아프지 않을 두 아들도 나를 만들었으나,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존경해 마지않는 음악인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감사하게도 진심으로 채수영 블루스 맨 그는, 그 중심에 서 있다.
큰 형님이 고사해도. 나는 그 자리에 그를 세울 것이다. 훗날 그와 조우하는 날. 맛깔나는 위스키 한 병을 품에 안고 곁에 다가가... 큰형님 덕입니다...라고 소회를 밝히며 건배를 나눌 것이다.
보고 싶어 미치겠다.
채수영 큰형님도. 진짜 내 형 같은 해철이 형도. 모두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