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 ㅣ 임찬묵 ㅣ 디페랑스
쉽게 버리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무엇보다 별것 아닌데 의미 두는 걸 즐긴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맥주 병뚜껑, 와인 코르크 마개는 물론, 꼬꼬마 시절 첫사랑 아이가 졸업식날 내게 준 선물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수집하고 모으는 걸 좋아하는데 장소가 협소해서 버린 적도 더러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니께 폭풍 잔소리를 듣더라도 끝끝내 버텼어야 했었을 것을...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 내 물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아내와 두 아이 물건을 다 합친 것보다 두세배는 훌쩍 넘는다. 따라서 좁은 뒷베란다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조금 가치가 있는 건 별도로 포장해서 부모님댁 베란다에 숨겨두었다. 부모님댁에 가져다 놓은 짐 역시 두 분의 물건을 합친 것보다 두 배는 족히 될 것 같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지! 마음만 굳게 먹어본다.
'SBS PD가 들여다본 사물 속 인문학'이란 부자가 눈에 띈다. 굳이 저자의 직업을 부제로까지 드러냈어야 하나 싶다. 물론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리면 좋은 거니까 나쁜 건 아니지만, 읽어보니 PD가 아닌 저자 그 자체로서 이야기가 듬뿍 실려온다. 남보다 더딘 운동신경과 궁금한 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모두 이해하고 넘어가는 저자의 성격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여러 물건과 이치에 능통한지도 모른다.
저자는 비록 '속물근성'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보다는 애착에 대한 개인의 서사 정도로 해석된다. 넘치지도 않고 충분히 가치 있으며 수긍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용이다. 범접할 수 있는 영역에는 감정이입이 쉽게 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진열장 너머 구경하는 마음으로 동경의 눈빛으로 글을 읽어갔다. 나보다는 몇 년 선배인 것 같은 그의 연령대를 가늠해 봤을 때, 역시 동기부여가 최고라는 삶의 이치 또한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찻잔, 부토니에, 도자기 인형, 위스키, 수공예 시계, 카메라 테이프, 타로카드, 오락실 게임기, 반가사유상, 승마, 책, 제면기, 마당과 식물, 양 무늬 스웨터, 오페라 선글라스, 담장의 잡초, 오래된 지도 등 여러 주제가 저자의 인생과 스타일이란 향신료에 얼버무려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주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별도의 이야기까지 각 주제별로 묶인 단락의 구성이 훌륭하다. 특히 양 무늬 스웨터라는 다소 독특한 아이템을 주제로 전쟁과 온라인, 주문 제작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풀어가는 방식은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누구나 자기만의 애정이 담긴 애착하는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결국 저마다의 역사와 의미가 깊게 베인 그것들은 풀어나갈 때 또 새로운 매력과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밤이 깊은 겨울 어느 날, 가족 모두가 잠든 깊은 시간에 이르면 술 한잔 곁들이며 숨겨두었던 오래된 내 물건들을 꺼내보려 한다. 너무 오래된지라 나도 그 안에 어떤 게 있는지 모를 정도가 되었지만, 꺼내는 순간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기억의 쓰레기장에서 사라졌던 기억의 구슬들이 샘솟듯 튀어 오를 것만 같다.
긴 더위 끝에 찾아온 가을 바람이 부드럽다. 추억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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