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小食) 한다는 소식(消息)

by 잭 슈렉

먹는 걸 좋아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하다. 먹고 죽은 귀신이 확실히 때깔도 곱다. 무슨 부귀영화 누리자고 끼니때를 놓치며 일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살면서 끼니때를 놓치며 무언가에 열중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 그가 영화 제작 현장에서 제시간에 밥 먹는 걸 사명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늘 배불리 먹었다. 라면 2개에 밥 말아 먹고, 맥주 안주로 와퍼 3개는 먹어줘야 든든하다. 돈가스 먹으러 가면 무조건 여러 종류 다 같이 나오는 스페셜이 필수다. 많이 먹은 걸로 기억에 남는 상징적인 순간은 짜장라면 6개와 삼겹살 11인분 정도다. 물론 동시에 먹진 않았다. 한창 먹을 때 뷔페에 가면 두 번을 먹었다. 무슨 말이냐면, 원래 먹는 코스대로 먹고 디저트까지 끝내면 다시 한번 더 먹는 거다. 중간에 디저트를 먹어서 뇌를 잠시 마비시키는 효과랄까? "넌 지금 막 이곳에 온 거다..."라고 최면을 거는 거다. 먹는다면 배불리 그것도 잔뜩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먹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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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좋아한다. 마셔야만 하는 이유는 늘 수십 가지 달고 다닌다. 춘분과 추분엔 밤과 낮 시간이 같아 마시고, 하지는 밤이 제일 짧아서 슬퍼 마시고, 동지는 밤이 가장 길어 기뻐서 마신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술술 넘어가는 '술'이란 글자를 유독 좋아한다. 술을 좋아하니 안주는 또 얼마나 좋아할까. 깡술은 흥미 없다. 술은 그 자체로도 맛나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일 때 그 매력이 증폭된다. 술이 있어 음식도 맛있어지고, 음식이 있어 술도 맛있어진다. 이래저래 술장사 두 번에 결혼 19년 차 지금까지도 아침은 내가 차린다. 어지간한 요리는 직접 만들어 배 터지게 즐겼다.


첫째가 태어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음악과 영화를 시작으로 여러 주제를 읽었다. 시와 소설, 수필은 감정 소모가 심해 아직 엄두도 못 낸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다 보니 온갖 이유와 근거로 소식의 중요성을 수시로 접했다. 특히 자연과학에서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걸 굳이 내가 왜 실행으로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선 일절 생각해 본 적 없다. 포식이면 모를까. 소식이라니. 말도 안 될 일이, 맞다.


그러던 어느 날, 읽고 있던 책에서도 소식의 중요성을 들려주었다. 늘 그랬듯 '또 소식 타령이구먼!'하고 넘어갔다. 때마침 영화 <세븐>의 재개봉을 무려 아이맥스로 즐겼다. 드디어 스크린으로 마주했다는 감흥에 관람 이후 10시간 가까이 음주를 즐긴 다음날이었다. 속이 정말 불편했다. 흔히 찾아오는 숙취와는 조금 달랐다. 이유 없이 정말 불쾌했다. 배가 터지는 게 아닌 꼭 찢어질 것 같았다. 읽는 책에서도 소식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별생각 없이 월요일 아침부터 소식이란 걸 시도, 아니 흉내 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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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먹는 밥에 딱 반을 먹었다. 점심도 마찬가지로 해봤다. 참고로 점심은 사무실에서 밥만 짓고 반찬은 각자 준비해오는 걸로 함께 먹는다. 때문에 집밥처럼 식사량 조절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저녁도 아내에게 미리 얘기해 반만 먹어봤다. 세상에,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정말 배고파서 죽을 수도 있을 거란 두려움에 휩싸였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릿속에 온통 군것질들이 춤추며 뛰어다녔다. 분명 나는 하루 세 끼를 다 먹었는데 왜 배가 온종일 고플 수가 있을까! 육두문자가 쏟아지는 걸 억지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자 신기한 기분이 감돌았다. 속이 그야말로 몹시 차분했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주 건강해진 기분도 들었다. 꼴랑 하루 소식하고 막 이런다. 본능적으로 허기짐이 이어졌으나, 그 본능을 압도할 정도로 편안했다. 신기하고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작은 일렁임도 없는 물 위에 중력을 거슬러 두둥실 누운 채로 떠 있는 느낌이랄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는데, 밥 달란 아우성이 아닌 이제야 편안해졌다고 고백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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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식을 시작했다. 행여 건강에 지장은 줄까 싶어 최대한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식이조절을 하기는 개뿔! 그런 거 없이 평소 먹는 거에 딱 반을 먹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3분의 1을 먹기도 했다. 점심 동지들은 왜 자꾸 소꿉놀이하듯 밥 먹냐며 핀잔을 줬지만, 묵묵히 꿋꿋하게 가야 할 길을 나아갔다. 그 와중에 나름 규칙도 정했다. 하루 세 끼, 일주일이면 스물한 번의 밥인데 그중 한두 번은 예외를 둔 거다.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의 외식 또는 일요일마다 찾아뵙는 부모님댁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만큼은 마음껏 먹었다. 그런데 그것도 잘 안됐다. 소식을 하다 보니 먹는 양 자체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얼마나 소식을 했다고 먹는 양까지 줄어든단 말인가! 이래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인가 싶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저녁은 가볍게 패스했다. 일요일 점심을 아버지와 함께 소주를 반주 삼아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쉬는 거다. 꾸역꾸역 쑤셔 넣기만 했는데, 아무 말 없이 그걸 다 받아준 내 몸도 반나절 정도 쉬어야지 싶었다.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다.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18개월 전부터 아내의 오랜 숙원이었던 운동을 시작했다. 집 근처 구립 스포츠센터에 가서 헬스를 했다. 일주일에 네댓 번, 20분을 달리고 20분을 각종 기구에 몸을 맡겼다. 운동하는 것마저 굳이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 그렇게 딱 40분만 즐겼다.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먹고 운동하고 오면 회사에서 있었던 스트레스도 가뿐히 사라져서 더더욱 좋았다. 슬픈 일은 아무리 운동을 해도 체중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뭐 체중을 줄일 맘도 없었다. 늘 그랬듯 적게는 1.5인분 많게는 2.5인분 저녁을 먹고 운동을 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운동하고 나면 더 배 고파질 테니 운동하기 전보다 더 많이 먹은 셈이다. 되려 초창기엔 체중이 3~4kg 더 늘었다. 그런데 소식을 시작하고, 운동은 하던 만큼 했는데 체중 줄어드는 것이 눈에 띄게 느껴졌다. 소식을 하는 목적이 다이어트는 절대 아니었는데, 엉겁결에 뭉툭한 턱 선이 날렵해지는 보너스까지 얻게 됐다. 그리하여 소식 시작 100일 즈음 되는 시기 몸무게를 측정했더니 무려 10kg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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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시작 이후 일상에서 달라진 점들이 제법 많다. 첫째가 태어나면서 끊은 탄산에 대한 욕망이 소식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편두통이 심해 출근일에 끊었던 커피 역시 완전히 등지게 됐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마셔서 더 애틋하고 감칠맛 난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 더부룩함이 사라졌다. 먹을 땐 행복했어도 먹고 나서 속이 부딪치는 그 특유의 느낌이 싫었는데 소식 이후 완벽하게 해방됐다. 끼니 사이 너무 배고프면 가볍게 간식을 먹는 걸로 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한껏 줄여나가고 있다. 방귀 냄새도 덜 나고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트림과 헛기침도 거의 사라졌다. 때를 두지 않고 밥 먹으면 잠이 오는 것도 역시 작별했다.


음식을 다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은 신기한 느낌이 석 달 열흘이 지나자 충분히 익숙해지고 있다. 이래저래 오징어지만, 피부도 조금 고와졌다. 더욱이 그전에는 2인분 같은 1인분을 주는 외식 메뉴를 찾았는데 이젠 0.5인분 주는 곳을 검색한다. 음식값도 0.5인분이면 참 좋겠다. 끝으로 이건 조금 심각한 고민인데 식사량이 줄자 술도 줄어드는 기분이 든다. 유일한 낙인 술까지 줄면 무슨 재미로 사나 싶다. 담배는 단 한 번도 입에 물어본 적 없다.


송골매가 불렀던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떠오르는 그야말로 '어쩌다 시작한 소식'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앞으로 쭉 이어가고자 한다. 가끔 눈 돌아가는 메뉴를 마주한다면 어금니 꽉 깨물고 과식도 할 거다. 암,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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