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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Apr 10. 2024

남는 건 사진 뿐. 모두의 사진 프로젝트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마쳤다. 선거 당일은 집 앞 남산으로 소풍을 계획했다. 지난밤부터 재료준비를 마쳐서 유부초밥과 모닝빵 샌드위치를 준비하는 아침은 다행히도 덜 분주했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남산의 벚꽃은 절정의 시기를 지났음에도 아쉬움이 없었다. 한창 예쁘게 사진찍던 두 녀석도 언제부턴가 카메라 앞에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지나면 사라지리라. 남는 건 사진 뿐이라며 유독 아내는 두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그리고 동영상으로 바삐 남겼다.


한눈에 딱 봐도 운동선수임에 틀림없었다.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마라톤을 준비하는 이도 보였다. 달짝지근한 연애를 즐기는 젊은 선남선녀들. 나란히 썬캡을 맞춰쓰고 걷는 여사님들. 삼삼오오 친구끼리 우리와 같은 가족도 남산 산책로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흩날리는 꽃비가 쉼없이 펼쳐졌다. 조금 흐린 하늘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더 아름답게 꾸몄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은 꽃잎의 비행을 더욱 길게 이어주었다. 추락하는 것이 아닌 바람결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가는 꽃잎 하나 하나의 여운은 그곳을 찾은 모든 이가 감당하고 있는 세월의 여운과도 닮아 있을까. 모두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연신 셔터를 눌렀다.


구성원이 단 두명이라면 셀카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허나 서너명에서 많게는 대여섯명이 되면 셀카로는 순간의 행복을 프레임에 담기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한 사람은 사진 찍고 다른 사람들은 자연을 배경삼았고 이후 순서를 번갈아가며 '가족오락관'에서나 볼 법 한 게임처럼 분주히 움직였다.


몇번을 스쳐지나갔다. 머뭇거렸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냉큼 큰 목소리로 다가섰다. '어르신, 괜찮으시면 제가 찍어드릴게요. 다같이 얼른 서세요' 60대 초중반의 부부 세팀이었다. 모두 여섯 명이었고, 두번째 남자분께서 사진을 찍던 순간이었다. 내 말과 동시에 모든 분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좋은 일 있을 거라며 한참 늦었어도 올해 복 많이 받으라며 덕담도 이어주셨다. 여섯분 가득 화면에 채워지도록 가로로 두세컷, 그리고 꽃을 배경 삼아 시원하게 세로로 두세컷. 덕분에 모처럼 발줌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남산 산책로에서 한팀. 한옥마을에서 두팀의 추억을 구성원 모두에게 전해주었다. 두번째는 노년의 부부셨는데 서로 번갈아가며 찍으시는 모습에 얼른 다가가 다정한 부부 사진을 만들어드렸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1분 정도 우리 가족 뒤를 조용히 따라오시더니 당신께서도 우리를 찍어주시겠다 하셨다. 마음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가서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다만 모두가 한장의 사진에 함께하는 것이 때론 어려울 때가 분명 있다. 근처 누군가에게 부탁하면 금방 가능해지기도 하지만, 또 그러자니 괜히 멋적고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10분도 아닌 기껏해야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 완벽한 추억으로 완성 될 선물을 줄 수 있는 일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 없다.


생사를 넘나드는 이를 구해줄 수도 있고, 소나기를 흠뻑 맞은 이에게 우산을 씌어줄 수도 있다. 불우이웃 돕기에 성금을 내거나, 환승역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목적지를 알려줄 수도 있다. 무거운 짐을 잠깐이나마 들어주는 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그와 나, 그리고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밀알이 될 것이다. 한 장의 사진에 함께하는 모두가 담겨 있을 수록 세상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감히 믿어본다.


+ 모두의 사진 프로젝트 : 모사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충 후다닥 서둘러서 이름지어보곤 여기서만 비밀로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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