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책 십 년 천권 : 책 속으로 풍덩

by 잭 슈렉

술을 좋아하는 내게 술 마실 때 지킬 유일한 규칙이 딱 하나 있다.


적당히 먹는 거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그 규칙은 즐겁고 기쁜 일에만 술을 마시는 것이다. 간혹 힘들고 슬플 때 위로받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결코 아니다. 술은 즐겁고 기분 좋을 때 즐기기 위해 마시는 기호 식품이다.


책을 읽을 때에도 내게 규칙이 있다. 20년 훌쩍 넘게 술을 마시면서 생긴 규칙처럼 독서에도 자연스럽게 생겼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실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만든 규칙이다. 그것은 바로 ‘정독하기’다. 출퇴근 시간을 대표로 하여 독서를 이어가면서 손에 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시로 고민을 했다.


소소한 즐거움만을 느껴야지. 읽다가 좋은 느낌을 받으면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야지. 실패할 책도 분명 생기겠지. 너무 어려운 책이라 하더라도 시작을 봤으면 끝을 봐야 해. 닭살 돋는 표현이지만, 저자와 마주 앉아 커피 마시면서 술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마음으로 책을 즐겨야지.


여러 마음가짐이 독서의 밑바닥에 두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을 가장 효과적으로 충실하게 구현할 수 있는 규칙은 바로 정독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문장이라도 차근차근 읽어 나가야 한다. 쉬운 내용 혹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책장을 쉽게 넘기지 않아야 한다.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면 네모반듯한 구석구석부터 중심부까지 꼼꼼하게 본다.


미술이나 건축분야 책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더 많은 눈길이 머물렀다. 그림 한 장을 보여주고 적게는 너 댓 페이지부터 많게는 스무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도중에 막히면 읽다가 앞장으로 후진하는 일이 잦았다.


독서를 시작하고 3년 차 정도 지나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해봤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머릿속에 남는 것은 얼마나 될까. 노트에 글로 남긴다면 열 줄 정도는 될까. 실험하고픈 마음에 몇 권의 책을 시도했는데 기껏해야 세네 줄이 전부였다. 당장은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조금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일정 시간이 흘러 일상 속에서 당시 읽은 책과 연관된 어떤 키워드 혹은 상황과 마주하면 책 속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술술술 소환되었다. 그렇다고 그때 읽은 내용이 전부 다 불러오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읽었던 경험과 읽는 과정 내내 생각했던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각인되고 메모가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독서를 함에 있어서 큰 목표나 지향하는 바를 두는 것은 물론 옳은 일이다. 시험을 앞두고 교재를 통째로 집어삼켜 먹을 기세로 외우는 독서도 있다. 하나,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떠올리는 경험을 책과 함께 이어간다면 한결 더 부드러운 맛과 넘쳐나는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 전체를 간파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욕심을 부리기보단, 지금 당장 눈길이 머무는 한 줄의 문장에 하나의 단락에 집중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독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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