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으로 만들기

책 십 년 천권 : 책 속으로 풍덩

by 잭 슈렉

밥벌이를 위해 직장을 다녀오기 위해 늘 지하철을 타게 됐다. 버스를 타던 시절도 분명 있었으나, 도서관을 다닐 때부터는 지하철이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일찌감치 운전에 뜻을 두지 않았고, 거주하는 지역이 서울이란 이점이 대중교통과 나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처음 2년은 출퇴근을 더해 지하철에만 60분 1시간을 머물렀다. 이후 2년은 양재동 외곽이 사무실이라 왕복을 합쳐 2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지금까지 6년 동안은 왕복 20분을 지하철을 이용한다. 책을 가장 많이 왕성하게 읽었던 것은 양재동 사무실을 다녔을 때였다.


하물며 그때는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을 사무실 근처 공원을 수 십 바퀴 걸으면서 차분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청계산 인근의 공간이라 평일 그 시간에 공원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식후 산책과 독서, 그리고 맑은 공기까지 더해져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풍경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특정 역 혹은 구간에 몰리면 그야말로 지옥철을 경험해야만 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돈 벌러 다녀오는 길이 이렇게 힘들까 싶었다. 많은 사람들과 부딪쳤고, 휩쓸리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눅눅하고 불편한 것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독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리에 앉으면 다행일지 몰라도 서 있는 채로 책을 읽는 건 분명 피곤한 일이 맞다.


어깨에 가방을 멘 채, 한 손으로 책을 들고 다른 손으로 수시로 책장을 넘기면 정말 불편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작을 하게 되면 삽시간에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 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평온하고 얌전해진다. 가장 좋은 것은 자리에 앉는 것이다.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적당한 백색소음이 집중력을 더 높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 폰에 시선을 고정하기 때문에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시간, 앉아 있는 공간, 손에 쥔 책으로 인해 시간을 단어 한 글자 문장 한 줄 단위로 보낼 수 있다.


다른 곳에서도 조금은 지하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함은 저 멀리 사라진다. 외부에서 볼일을 볼 때 시간이 남으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시간이 여유로워 PC방에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땐 신기하게도 늘 20~30분 정도가 내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가 되기 일쑤였다. 인터넷 서핑을 독서 이상으로 좋아하지만, 좁은 스마트 폰 화면으로 뭔가를 오래 하면 쉽게 눈이 피곤해졌다. 여유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은 적절하게도 독서가 되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가방과 비교한다면 책 한 권이 들어 있는 가방은 분명 무겁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맞다. 그리고 이동할 때마다 한 권의 책 무게만큼을 늘 짊어지고 다니는 일은 없을 때에 비해 부담이 된다. 하지만, 가방 속에 있는 책 한 권이 때때로 만들어지는 시간의 틈 사이를 제법 견고하게 채워준다.


대단한 지식을 얻는 행위도 아닌, 깨우침을 느끼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도 아니다. 그 모든 과정이 식후 양치를 하듯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을 뿐이다. 책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면 무게감이 남다를 테지만, 매일 가방 속에 책이 들어 있다면 그 무게만큼 본래 가방의 무게가 된다.


충분히 감당할 만한 젊음이 내게 허락되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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