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가 있다. 4절이 조금 더 되는 노래에 100명의 위인을 알뜰하게 담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배우면서 다시 떠오르게 됐다. 누가 더 많이 외우는지, 가사 속 위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나눌 이야기가 무척 많은 노래였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원효대사 해골물'이었다. 그가 느낀 깨우침을 단 일곱 글자 - 사실 이름 빼곤 달랑 세 글자 -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담아낸 부분이다. 이후 종종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나도 모르게 내뱉는 구절이기도 하다. 세상만사 모름지기 마음먹기에 달렸다.
플라세보효과란 것도 있다.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건강기능식품 대부분이 바로 이런 플라세보효과에 의의를 두지 않나 싶다. 물론 해당 제품에는 우리 몸에 좋은 여러 원료들이 들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효과를 누릴 만큼 오랜 기간 그리고 고함량을 섭취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욱이 면역력을 강화해 주는 성분은 어느 과학자의 의견을 빌어 아직은 없다 한다. 말 그대로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성분일 뿐이다.
무식한 방법으로 스쾃을 즐겼다. 봄여름 가을에는 매일 주기적으로 걷기 운동을 했으나 한겨울에는 할 수가 없어 스쾃을 선택했는데, 아내가 꼼꼼하게 가르쳐 준 자세가 언제부턴가 흐트러진 것이다. 오른쪽 무릎이 살짝 아프길래 아내에게 이야기를 전했더니 종아리 안쪽 은은하게 보이는 실핏줄이 있어하지 정맥류가 아닐까 싶은 우리끼리의 진단을 내렸다.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혈관 외과가 있어 초음파 검사를 받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하지 정맥류가 맞는다고 했다. 압박스타킹을 신었고 퇴근 후 1시간 정도 다리를 올렸다. 물론 잠드는 내내 다리를 올리느라 온갖 고생을 이어갔다.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게 비싼 수술비가 부담되어 조금 저렴한 병원을 찾던 중, 인천에 병원을 찾았다. 하지 정맥류 판정 이후 3주가 지난 때였다.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역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웬걸! 의사는 하지 정맥류가 아니라고 했다. 초음파 검사를 돕던 간호사도 절대 아니라는 제스처를 내게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같은 의사인데 한 명은 진단을 내렸고 다른 한 명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여러 감정이 들어 의사에게 조목조목 따지듯이 차분하게 의견을 물었더니 정말 아니라고 했다. 아무 일 없으니 마음대로 지내라고 했다.
돈 욕심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아무 병도 아니란 사실에 기뻤으나 약간의 허탈감과 억울함, 그리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나 혼자 3주 고생한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우스운 것은 인천의 병원을 찾은 그날 그 시간 이후로 오른쪽 다리가 깨끗하게 나았다는 것이다. 가는 길 지하철에선 그렇게 아팠는데 오는 길 지하철에선 날아다닐 듯 가벼워졌다. 압박스타킹을 안 해서 더욱 그러겠지만 잠들기 전에도 안 아프고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일절 통증은 없었다. 누군가가 버튼을 켰다가 끈 것처럼 거짓말 같았다. 의사의 이기심으로 얻은 마음의 병은 그렇게 말끔히 사라졌다.
고민 따위 일절 안 하는 성격이다. 후회는 더더욱 안 한다. 후회할 시간에 술 한 잔 더 먹자는 논리다. 따라서 더더욱 마음의 병으로 고생한 그 시간 동안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누군가에 의지하고 그의 반응에 따라 내 의식과 몸과 마음까지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잠깐 겁이 났다. 어쩌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도 당시 나와 닮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무교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지 아닐 수 없다.
한치 앞날 모를 수밖에 없는 인생. 또 언젠가 마음의 병이 나를 괴롭힐지는 모르지만 이번 일을 거울삼아 조금 더 신중하고 다방면으로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