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내가 좋다 ㅣ 원은정, 정현아, 김보라 ㅣ 착한책가게
6학년 첫째의 담임 선생님은 수업과정에서 '영화관람'을 통해 정규 수업의 내용을 대체하겠다고 했다. 얼마 전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소감을 써오라 했고 가장 최근엔 <트루먼 쇼>가 꼽혔다. 아이가 두 편의 영화에 대해 내게 물었고 기다리기라도 한 듯 영화에 대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가 결국 아내에게 핀잔만 들었다. 이유 불문 좋은 영화는 사람의 미래를 바꿔 놓을 수도 있고, 좋은 영화는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충분히 즐거운 일이 된다.
'존중과 공감을 만나는 초등 영화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본 책은 세 분의 저자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토대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존감, 자기 기회, 관계와 우정, 공감과 포용 등의 이해관계들이 영화들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청소년을 위한 영화는 의외로 찾기 쉬우나 초등학생을 위한 영화는 사실 생각보다 그리 만만하지 않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위해 짧게는 90여 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을 꼬박 화면 앞에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영화는 그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나와 아내 모두가 아이들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 자주 활용했던 매체다. 하지만 충분히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한두 장면 전개상 등장하는 과격하거나 다소 부적절한 장면들이 있는 작품이 제법 많았다. 이걸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런 연유로 저자들은 본 책에서 소개하는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뒀는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애니메이션에는 뜬금없이 등장하는 거북한 장면은 없으니 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소울>, <토이스토리 시리즈>, <엘리멘탈> 등 네 개의 소주제에 맞는 영화들이 서너 편씩 등장한다. 어른이 보는 관점에서는 쉽게 지나칠법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어린이에게는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저자는 꼼꼼하게 지적해 주고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쿵푸팬더> 시리즈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지난날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많은 부분 일치했다. 1, 2, 3편을 통해 주인공 포가 느끼는 심경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된다. 우연과 노력, 내면의 평화, 존재의 발견은 어쩌면 모두가 끊임없이 이룩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최근 개봉한 4편을 통해서는 관계와 이해로 그 초점이 모아진다.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준 영화도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당시의 나를 돌아볼 수도 있었다. 보통은 영화가 끝나면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주인공이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들려줬고, 나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나름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그전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예행연습을 한 것만 같다.
우리는 결국 사회적 관계를 끊임없이 맺어갈 수밖에 없다. 다름과 틀림 그리고 차이에 대해서도 쉼 없이 부딪치고 닳게 된다. 투쟁이라고 하면 너무 과격하겠으나 외면한다고 자유로워질 수 없을 어른의 세계를 앞둔 아이들에게 이 책이 그리고 좋은 영화들이 조금이나마 안전한 에어백과 같은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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