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 콕이나, 집 콕이나
줄줄 비 온다. 오는 비에 가슴이 적는다. 집안에만 갇혀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자.
매일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서다가 9시가 다 되어 나가려니 부딪치는 이웃의 눈길이 거북살스럽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린다.
"나, 윤 이요"
내가 있었던 회사 사장님이시다.
"인제 일어났나? 미안해. 내가 다른 직장을 알아볼 테니 한두 달 쉬며 마음 편케 가지라고…"
나는 어차피 나가야 했던 사람이다. 그래도 진심이 어찌 되었든 전화를 걸어준 그 마음은 참 고맙다. 내게 전화를 걸어준 사람은 유일하게 사장 한 사람뿐이다.
전화받기가 번거롭기도 하다. 그래도 무심한 다른 직원들이 섭섭하고 야속하다. 어쩌랴. 나 도 그들에게 섭섭하게 한 일이 어디 한 둘일까.
부서 직원들에게 결혼식 때 사내 공람 돌려 몇십만 원 축의금을 만들었다. 부장인 내가 비디오카메라 들고 결혼식을 찍고 편집하여 주었다. 그들이 집들이 때 술 종류와 살림살이 한 가지 야무지게 챙겨주었다. 술 취해 못 나오면 ‘끌끌’ 혀차면서 더러 월차로 정리해 주기도 한다. 그들 부인이 아들딸 낳으면 병원으로 꽃다발 보내주고, 자신이 아프다면 쾌유를 빈다고 봉투 하나 만들어주었다. 그런 부장으로 직장 생활을 해왔다. 부하직원들은 그야 부장이면 다 하는 일 아니요 할 수도 있으리. 부장이면 다 이렇게 사느냐. 너희가 부장에게 해 준일은? 술 마시고 접대비 처리해달라고? 바보 부장이요 어리숙 부장이다.
내가 바라는 건 ‘송별금’인가. 천부당만부당.
내가 바라는 건 ‘일자리’인가. 천만만만의 말씀.
내가 바라는 건 ‘ 아자 아자 열심히 사세요. 파이팅’격려 한마디다.
사랑이란 으레 내리사랑이지. 치사랑이 어디 있던가? 베풂으로 끝나지 섭섭하다니 밴댕이 소갈 딱지일세.
회사에 있을 때 조합 주택 대행하던 이를 만났다. 그에게 커피와 삼천 원짜리 점심 대접을 받고 기약 없이 헤어진다.
내가 근무 시 지주 공동 사업을 했던 이가 여태 룸살롱 사장이다.
내 전화에
“봅시다. “
회사일로 10년간 그와 함께 일했었다.
약속하고 그에게 갔다. 이미 룸살롱에는 손님들 한 떼가 바글거렸다.
손님과 룸살롱 웨이터들 간에 주먹다짐이 오고 갔는지 사무실 분위기는 난장이다
그들 대화를 곁에서 말없이 듣자니 시작만 있고 끝이 없어 지키고 있기가 지루했다. 술 한 잔 안 하는 내가 뭐 하러 여기서 일직 근무를 하고 있는가.
내 휴대전화가 울린다. 함께 그만두었던 정 차장이다.
"지금 어딘가? 왜, 집에 안 있고…"
"집사람에게 아직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 못 했습니다."
딱한 사람. 아내가 놀랄까 봐 면직 사실을 말 못 하고 그는 이 비가 얼마나 차갑고 싸늘할 것인가?
저녁에 아들놈은 무슨 모임이 있다 하여 늦게 돌아오고 난 뒤 집안 식구를 다 모았다. 강아지까지 모았다. 녀석은 사람이 모이며 저도 따라서 온다. 한 식구니까.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너희에게 그동안 나름대로 애를 써서 잘 돌아주려고 애를 썼으나 너희의 생각을 어떤지 모르겠다. 이제 앞으로 상당히 힘들 것이다. 어렵더라도 함께 힘을 합쳐서 이겨나가자."
애들은 그냥 고개만 떨치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다만, 한마디.
"아버지, 힘내세요."
그 한 마디건만 그들은 말이 없다. 무슨 말을 아이들이 내게 하랴.
집에 있으니 회사보다 더 바쁘다. 시간이 나지 않는다. 차 닦고, 수족 제대로 못쓰는 아내 대신 설거지하고, 은행에 함께 가주고, 어머니 댁에 국과 김치 가져다드리고, 강아지 병원 데리고 가기와 장모님 모시고 오가기로 하루해가 꼴딱 이다.
그리고 방구석에 잠시 있으면 아내가
"자기 뭐해?"
혼자 있을 시간을 안 준다.
하긴 실직 고통은 나처럼 아내에게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