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다는 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아이가 울고,
고집을 부리고,
감정을 터뜨릴 때,
우리 역시
그 순간을 충분히 인식하기도 전에
감정보다 말이 먼저,
말보다 몸이 먼저 달려 나간다.
마음이 준비되기도 전에.
이유를 알기도 전에.
나의 반응은
감정보다 감각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신생아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손을 움켜쥐고 몸을 움츠리는 반사 행동처럼.
우리는 쉽게,
아이만 반응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부모 역시
감지하고 반응하는 존재다.
무의식처럼 흘러간 반응 앞에서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었나.”
“그 말을 꼭 했어야 했나.”
“내 반응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구나.”
아이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고단함과 함께 조여 오는 감정들.
아이가 나를 닮아갈 때,
부모라는 존재감과 영향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이 나를 압도하는 순간,
어디선가 억울함이 고개를 든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게 아닌데...’
아이의 반응 안에는
부모의 말투, 표정, 얼굴빛, 숨소리까지
스며든다.
그냥 내 엄마라서,
그냥 내 아빠라서.
그게 이유다.
다중미주신경 이론(Polyvagal Theory)의 핵심 요소인
‘신경지(Neuroception)’라는 개념이 있다.
신경지는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지금 이 순간이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자동적으로 감지하는 신경 시스템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긴장과 이완, 불안과 평온은
이미 뇌 깊숙한 곳에서 결정되고 난 뒤에야
내 마음에 ‘감정’이라는 얼굴로 떠오른다는 뜻이다.
이 반응은 학습 이전의 것,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생존 시스템,
반복된 경험 속에서 더 단단히 형성된 반응의 지도다.
기질 검사는 36개월 이후에야 가능한 것도
이 생존 시스템에 ‘반응의 지도’가 새겨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부모라는 환경을 매 순간 감지하고 있는
아이의 예리한 감지 센서인 신경지,
그 앞에 우선 멈춰본다.
PAUSE
멈춘다는 건,
이런 자동 반응의 흐름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일이다.
‘반응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나’가 되는 것.
아이를 통제하려는 순간을
나를 바라보는 순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멈춤은 기술이 아니다.
멈춤은 태도다.
반응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신생아의 반사행동이
사라지는 것이 정상발달의 신호이듯,
그 ‘멈춤’의 순간이
부모가 된 나의 출발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