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메타인지
오늘도 키즈카페에서
집에 가기 싫어할 것이라는 것.
여행에서 힘들어지면
투덜거릴 거라는 것.
부모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또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일상을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예측했던 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기대했던 만큼,
혹은 피하고 싶었던 만큼,
부정적인 감정까지 함께 터져 나오곤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또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다.
“나는 몇 번까지 참을 수 있을까.”
난 몇 번까지 참을 수 있을까 질문은
단순히 인내심을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통제와 메타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자신의 사고나 감정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을 말한다.
부모가 같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반응을 반복한다면,
그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 있다.
“지금 나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내 감정을 관찰하고 조절하려는 메타인지의 실천이다.
이처럼 나의 반응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조절하려는 실천은
내 아이에게 안전한 정서 환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은 쉬는 날이었고
기분 좋은 일도 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피곤하고 지쳐서
쉽게 폭발할 수도 있다.
이 기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내 반응이 들쑥날쑥해진다면,
아이에게는 나의 감정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분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부모의 감정이 예측 가능하지 않으면,
아이에게는 그 불안정함이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퇴근 후 문 앞에서 잠시 숨 고르기,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 세기,
감정이 폭발하기 전 스스로에게 타임아웃 주기.
이런 소소한 대안들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다양해지고,
결국 아이에게도 더 안전한 환경의 자원이 된다.
양육을 우리는 종종 쉽게 생각한다.
아직도 아마추어가 많은 영역인 것도 그 때문이다.
듣기만 하면 소소한 일들이지만,
막상 실행은 어렵다는 것이 진리다.
그래서 양육은 어렵다.
어쩌면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반응을 반복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일 일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어려워하는 나를 다그치기보다 먼저 안아주는 일.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참고 있는 나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참는 나를 인식하는 것.
그걸 알게 된 이후에야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양육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힘듦 속에서
나는 나를 알아가고,
아이를 알아가는 기회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