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공했다고(=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들 BEST 5
5위. 일요일 저녁 소고기와 소맥
아내가 첫째 딸을 임신 중이었을 때다. 일요일 저녁에 동네에서 맛집이라고 소문난 고깃집에서 소고기를 먹으면서 소맥을 들이부었다. 회사에서 한창 힘든 시기였는데 고기도 너무 맛있고 쏘맥도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비싼 소고기는 아니었지만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 일요일 저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걸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
아내에게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 지금 너무 성공한 거 같아."
(여담으로 일요일 저녁에 재밌게 놀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재밌게 논 거와는 또 다른 쾌감이 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재밌게 논 거와 내일을 걱정해야 할 때 재밌게 놀 때, 특히 앞으로 닷새나 출근해야 하는 날 재밌게 놀 때는 뿌듯함이 더하다.)
4위. 15,000원짜리 미역국
회사 근처에 미역국 전문 식당이 있다. 이 미역국은 집에서 먹는 그런 보통 미역국이 아니다. 1인분에 무려 12,000원이다. 믿기는가. 12,000원 미역국이라니. 더 놀라운 건 그게 제일 싼 메뉴라는 거다. 그 안에 전복이나 소고기가 들어가면 20,000원까지 올라간다. 이 정도면 미역국은 음식이 아니라 상전이다. 무릎 꿇고 먹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미역국을 난 1년에 세 번 정도 먹는다. 그것도 가장 싼 12,000원짜리가 아니라 중간 등급인 15,000원짜리로. 에헴에헴.
무엇보다 내 돈이 아니라 법카로 사 먹는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내 돈이면 그 돈으로 미역 사서 1년 동안 미역국만 먹을 순 있겠다.
3위. 요새 누가 커피 사면 다 먹습니까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편이다. 건방지게 습관적으로 커피의 반은 버린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 아니다. 얼죽아*라 아아** 마시는데 커피 한 잔을 3~4시간 먹을 정도로 천천히 마신다. 그러면 얼음이 다 녹아버려서 맛이 없어진다. 버린다.
(*) 얼죽아 :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 아아 : 아이스 아메리카노
회사 사람들이랑 카페에 갔다. 나만 빅 사이즈를 시켰다.
"이 큰 걸 다 먹어요?"
같이 간 사람의 물음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 허세라고 할 수 있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어차피 커피 절반은 버려요. 내가 내는 돈 안에는 버리는 맛도 포함돼요."
스웩.
2위. 택시비 얼마 나왔어?
친구의 결혼식이 청담에서 있었다. 집에서 늦게 나와 택시를 탔다. 사실 택시 탈 생각에 늦게 나왔다.
예상보다 길이 막혔다. 늦게 식장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으레 하는 질문으로 물었다.
"어떻게 왔어?"
"택시"
"얼마 나왔어?"
"..."
그제야 핸드폰으로 택시비가 얼만지 확인하는 나에게 친구가 한 마디 했다.
"너... 부자구나?"
그랬다. 택시비가 얼마 나온 지 보지도 않고 결제하고 나왔다. 택시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미터기만 보던 시절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기사님이 미터기 안 눌러서 요금 더 올라갈까 봐 노심초사하고 그랬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택시에서 미터기를 안 본다.
미터기 안 보고 택시 탄다는 건 서울 안에 수만 명의 (비전담)기사님이 있는 거와 같다.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참고로 난 운전을 못 한다.
1위. 아내.
이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