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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1. 2021

기부의 목적

기부금 누적 15,000,000원을 돌파했다. 


간헐적으로 기부를 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기부를 시작한 건 2014년 12월이었다. 14년 12월, 목 디스크가 터졌다. 그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없이 고통스러웠다. 통증은 약 5개월 동안 24시간 내내 지속됐다. 누워있으면 더 아파서 앉아서 자야만 했다. 통증이 3개월째 될 즈음부터는 매일 밤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 눈 떴는데도 이렇게 아프면 그냥 죽어버려야지' 생각했다. 15년 4월 즈음에 완벽하진 않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통증이 수그러들었다. 


아파보니까 아픈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세상에 질병이란 건 왜 있을까. 도대체 신은 왜 병이란 걸 만들었을까' 한탄. 증오. 의문 같은 것이 마음속에 생겼다. 고등학생 때 심한 여드름으로 사람 눈을 제대로 못 쳐다볼 수준의 미약한 대인기피증을 앓던 시기에도 '세상에 여드름은 도대체 왜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육체적 통증을 수반하는 고통은 또 다른 레벨의 고난이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담아 기부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기부는 내 인생의 중요한 목표이자 일상이 되었다. 세상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전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피부로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기부는 한계가 있었다. 미약하지만 누가 더 도움이 필요할까 고민 끝에 질병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환아들 위주로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애를 갖기 전에는 초등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주로 기부했지만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보니 갓난아기도 얼마나 예민하고 민감한 존재인지 알게 되면서 기부 대상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내 도움이 작게나마 그들의 완쾌에 힘이 되기를. 적어도 하룻밤만이라도 약값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잘 수 있기를. 병원비 걱정 없이 밥을 먹고 한 번이라도 더 통증 이완제를 맞을 수 있기를. 이런 마음을 담아서 기부했다. 내가 나중에 너무 아파서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마음이 돌고 돌아 나한테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존 레논스러운 상상도 가끔 했다.

 

정확히 얼마로 시작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월 기부액을 매년 높였다. 매년 연봉 상승률보다 높은 기부금 상승률을 기록해왔다(높은 기부금 상승률은 2016년 찾아온 허리 디스크도 큰 역할을 했다. 내 고통에 비례해서 기부를 늘렸다). 육아휴직에 들어서면서 수입이 없어져 기부금을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으나, 휴직 전  모아놓은 돈으로 기부를 이어갔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생각 공유장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다.

 

'가끔 스스로가 초라하고 가진 게 없다고 느껴질 때 나보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을 보고 내가 가진 것들을 감사하며 힘을 얻는다. 대신 그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 죄책감 같은 게 생긴다. 그 빚을 나중에 커서 돈을 벌게 되면 갚고 싶다.'

 

친구들은 내 솔직함에 놀랐던 건지 아니면 내가 보기보다 자존하지 못하는 놈이라는 거에 놀랐던 건지 아니면 겉으로 보기엔 쟤는 생각이란 건 하고 사나 싶은데 이런 이상한 생각을 다하네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를 신기해했다.


사실 지금도 기부를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딱히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 그래도 오늘 밤 누군가는 내 덕에 고통 없이 잘 수 있겠지? 이번 겨울은 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겠지? 이번 달은 월세 걱정하지 않겠지? 하며 자위한다.


이런 내 마음이 간사한 걸까. 비겁한 걸까. 


이런 내 마음이 간사하고 비겁하다고 할지언정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다면 더더욱 간사하고 비겁해질 용의가 있다. 더 많은 기부로 내 자존감을 높여갈 작정이다. 어찌 됐건 안 아픈 게 훨씬 중요하다. 아파 본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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